어느 기업에서건 파벌이나 인맥은 존재하게 마련이다. 경영이나 인사에 얼마나 영향을 미치는지는 기업마다 다르지만 말이다.

실제 여론조사업체인 엠브레인이 직장인 659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전체의 70.6%가 '인사 등에 영향을 미치는 파벌이나 인맥이 회사 내에 존재한다'고 응답했다. 사내 인맥 중 가장 결속력이 높고 영향력이 큰 집단으로는 '학연'(22.2%)이 꼽혔다. '혈연'도 21.7%로 상당했다. 이어서 '특정인 중심의 사적 네트워크'가 18.2%,'같은 부서 근무경험자들의 모임'이 17.2% 순이었다. 반면 '지연'(15.3%)은 상대적으로 낮았다. 전통적 인맥인 학연 · 혈연 · 지연 중 지연의 색채가 엷어지는 반면 특정인이나 특정부서를 중심으로 한 인맥은 강화되는 추세라고 해석할 수 있다.

인맥이 영향을 발휘하는 건 역시 인사 때다. 인사철마다 이러쿵저러쿵 말이 나오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인맥의 영향력은 주인이 있는 사기업이냐,아니면 공기업이냐에 따라 다르다. 사기업은 오너인맥이 최고다. 오너 눈 밖에 나면 끝이다. 절이 싫으면 중이 떠나야 한다. 물론 오너가 아닌 전문경영인이 누구냐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전문경영인들도 믿고 맡길 수 있는 사람과 함께 일하고 싶어하기 때문이다.

대기업 A사의 인사팀 관계자는 "학연 지연 등 제3의 변수가 임원 인사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기도 한다"며 "가끔 예외도 있지만 대부분 '팔은 안으로 굽는다'는 공식이 맞아 떨어진다"고 전했다.

주인없는 공기업이나 은행에서 파벌은 기승을 부린다. 정권이 바뀌면 최고경영자(CEO)가 흔들린다. 공기업적 성격이 짙은 포스코의 이구택 회장이 임기 중에 물러난 것이 대표적이다. 새 CEO가 들어오면 사내 파워인맥이 완전히 뒤바뀌기도 한다. 일부 기업에선 정권교체를 연상시킬 정도라고 한다.

물론 몇몇 공기업을 중심으로 고위직 사내공모제 등 능력 중심의 인사선발 제도 도입을 추진하고 있다. 그렇지만 사내에 고착된 파벌을 뽑아 내기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업계 관계자는 "일부 공기업은 학연 지연 외에도 직군과 살고 있는 지역에 따라 파벌이 형성되는 등 복잡한 인맥지도가 그려져 있다"고 말했다.

이정호 기자 dolp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