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의자 인권 논쟁, 사형제 부활론으로 확대

연쇄살인범 강호순(38)의 실명과 얼굴의 공개 여론이 커지자 언론사 사이에서도 사진을 포함한 범인 신상공개에 대한 입장이 엇갈리고 있다.

특히 지난달 31일부터 강호순의 얼굴 사진이 신문 지면과 방송 화면에 공개되면서 피의자 초상권 문제가 본격적인 공론화 단계에 오르기 시작했다.

피의자 인권보호와 무죄추정의 원칙, 여론재판 금지 등은 신상 비공개의 논리를 뒷받침해주는 반면 국민의 알권리 보장과 추가 목격자 및 제보 확보, 경각심 고취 등은 공개 논리를 뒷받침해주고 있다.

◇다수 언론사 얼굴공개 = 지난달 31일 조선일보와 중앙일보가 먼저 국민의 알권리 및 수사협조, 범죄예방 등 공익성을 명분으로 삼아 강호순의 얼굴 사진을 공개하자 2일에는 동아.국민.세계일보, 서울신문이 추가로 강호순의 사진을 실었다.

방송도 SBS가 지난달 31일 저녁 8시 뉴스에서 강호순의 얼굴을 화면으로 공개한데 이어 KBS는 같은날 `뉴스9'에서, MBC는 다음날인 1일 `뉴스데스크'에서 얼굴 사진을 내보냈다.

특히 강호순은 자신의 얼굴이 언론에 공개된 사실에 대해 큰 충격을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동아일보는 이날 강씨의 일상 모습이 담긴 사진을 실으며 "진실 규명 등 공익, 신원 공개를 통한 사회적 응징을 요구하는 여론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경기 서남부지역 연쇄살인사건 피의자 강호순씨의 얼굴 사진을 공개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강호순 얼굴 사진을 먼저 공개하고 나선 조선.중앙은 2일자 지면에서 인터넷 여론조사 결과와 사설 등을 통해 강호순 얼굴공개의 당위성을 주장하고 나서기도 했다.

조선일보는 이날 사설 `반 사회적 범죄자 얼굴 공개하는 게 옳다'에서 "강호순처럼 인간이기를 포기한 연쇄살인범에게까지 신원 보호원칙을 적용해야 하는지 따져볼 때"라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문재완 한국외대 법대 교수는 "범죄의 사회적 해악성을 고려해 공익과 사익을 비교, 판단해 공개해야 한다"고 전제하면서 "흉악범의 얼굴 공개시 목격자 추가 확보와 경각심 제고 등 효과를 거둘 수 있다.

공개 문제는 언론사 판단이지만 공개를 통한 사회적 이익이 더 크다"고 말했다.

문 교수는 그러나 "절도 피의자의 경우엔 피의자의 프라이버시를 침해하면서까지 공익을 우선할 수는 없다"며 "공개를 했을때 얻을 수 있는 사회적 이득보다는 프라이버시가 앞서있다"고 지적했다.

◇일부는 비공개 원칙 고수= 반면 한겨레와 한국일보는 이에 대해 반대 입장을 표명했다.

한겨레는 2일 "흉악범이라 할지라도 공인이 아닌 이상 실명과 얼굴을 공개하지 않는다는 것이 원칙"이라며 "이는 헌법상 무죄 추정의 원칙, 그리고 아무리 끔찍한 범죄를 저지른 사람이라 할지라도 신상 공개는 수사상 필요한 최소한의 범위에서 이뤄져야 한다는 인권적 형사법적 측면을 두루 고려한 결과"라고 주장했다.

한국일보도 "사진 공개에 따라 얻어지는 공익과 이를 위해 치러야 할 사회적 비용을 둘러싼 국민적 합의가 아직은 충분치 않다고 판단했다"며 비공개 결정 이유를 설명했다.

한편 경향신문은 아직까지 이 문제에 대한 입장을 내놓지 않았다

국내 언론은 1990년대까지는 살인 등 강력사건 피의자의 얼굴을 공개해왔으나 `피의자 인권'이 강조되던 2004년께부터 경찰이 피의자 얼굴과 신원의 언론 노출을 막자 언론도 이들 중범죄자의 이름과 얼굴을 적극 공개하지 않아왔다.

고민수 강릉대 법대 교수는 이와 관련, "형사관계법에서 피의자는 무죄추정의 원칙에 적용받아야 하기 때문에 재판을 통해 범죄가 확정되기 전 단계에서는 개인 신상이 공개되는 것은 바람직 하지 않다"고 강조했다.

그는 "열명의 범죄자를 놓쳐서 한명의 인권을 보호해야한다는 격언도 있다"면서 "공익과 사익의 비교논리의 경우도 현재 범죄사실이 확정되지 않은 상황에서 공익과 사익을 비교하는 것은 전제 자체가 성립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는 또 "많은 사람들이 공분할 수밖에 없는 사안이지만 얼굴 공개는 분노를 자극시키거나 감정적 카타르시스를 일으키기 위한 도구라는 평가를 받을 수도 있다"면서 "신상 공개시 피의자 가족이 받을 수 있는 피해도 고려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강호순 얼굴 공개에 따른 피의자 초상권 문제가 실질적인 폐지 상태인 사형제 부활론과 피의자 인권 축소, 나아가 피해자 보호강화 등 논리와 맞닿아 사회적 논쟁을 확대시킬 전망이다.

(서울=연합뉴스) jooho@yna.co.krpenpia21@yna.co.krlkbin@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