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쇄살인범 강호순(38)은 2005년 10월 처가집 화재로 부인과 장모가 숨지자 전국을 방황했다고 했다.

강은 2007년 1월 4차 범행을 저지른 뒤 언론이 주목하고 경찰의 수사가 진행돼 5차 범행을 재개할 때까지 범행을 중단했다고 했다.

강이 주장한 14개월 간의 '방황기', 22개월 간의 '공백기'에 과연 강은 어디에서 무슨 일을 했을까.

경찰은 2일 전국에서 발생한 실종 사건 등 강의 범행 수법과 유사한 사건에 대해 강의 연관 여부를 면밀히 조사하고 있어 강의 이 기간 행적이 주목되고 있다.

강은 장모집 화재로 넷째 부인이 숨진 뒤 충격을 받아 방황했고, 5차 범행 후에는 경찰의 수사망을 피해 범행을 중단했다고 진술했으나 주변의 말을 들어보면 강의 진술을 액면 그대로 믿기에 석연찮은 구석이 한 두 군데가 아니다.

경찰에 따르면 강은 "2005년 10월 안산시 본오동 처가에서 발생한 화재로 장모와 전처가 사망하자 충격을 받고 자포자기하는 심정으로 전국을 떠돌아다니며 1년여를 방황한 후 여자들을 보면 살인충동을 느꼈다"고 진술했다.

그러나 처가 화재 당시 장모와 전처가 숨지고 강은 장남과 함께 탈출해 목숨을 건진데다 숨진 전처 명의의 4건 보험으로 보험금 4억8천만원을 수령했다는 점에서 방화혐의에 대한 재수사가 진행 중이다.

처가집 화재 뒤 2006년 12월 14일 첫 희생자 배모(당시 45세) 씨를 살해할 때까지 방황기라고 하는 이 기간 강은 주소지를 세 번 옮겼다.

강은 2004년 2월부터 2006년 10월까지 안산시 상록구 팔곡1동 산3에 주민등록을 두고 있었다.

이 곳은 강이 수원시 당수동 축사로 오기 전까지 개를 사육하던 곳으로 추정되며 지금은 사람이 거주하지 않는 건물 4동과 개사육사가 남아 있다.

개사육장은 강이 원두막 가건물에서 장사를 했다는 군포시 둔대동 반월저수지와 서해안고속도로를 사이에 두고 600m, 강이 최근 살던 안산시 팔곡1동 연립주택과는 2㎞ 정도 떨어져 있으나 진입도로를 찾기 어려울 정도의 야산 중턱에 있다.

이웃 개사육농장 주인은 "강 씨가 2004년 이전부터 넷째 부인과 개와 닭을 키우면서 음식장사를 했다"고 전했다.

팔곡동 한 이웃 주민은 "4-5년 전 반월저수지 뒤쪽에서 개를 키웠다는 얘기를 들었다"고 전했고 또 다른 주민은 "개를 키우다 불이나 수원으로 축사를 옮겼다는 얘기를 들었다"고 말했다.

그 이후에도 강은 2006년 12월 수원시 당수동 축사로 이전할 때까지 충남 서천군 시초면 고향마을에 나흘간, 대전시 부사동에 38일간 주민등록을 두고 있었다.

실제 거주여부를 제쳐놓고, 주소만 놓고보면 타지를 방황한 기간은 고작 42일에 불과하다.

네째 부인이 사망하기 전후한 시점 강의 직업은 개 사육이었고 부인 사망 뒤 방황기에 그가 사육장에 있었는지 여부는 확인이 안된다.

강은 2007년 1월 7일 여대생 연모(당시 20세) 씨 살해 이후 2008년 11월 9일 주부 김모(당시 48세) 씨를 살해할 때까지 22개월간 범죄를 저지르지 않았다고 주장하고 있다.

팔곡동 이웃주민은 "반월저수지에서 지난해 여름에 찰옥수수와 양봉꿀, 칡즙 등을 팔았고 주변에서 개와 토종닭을 키우고 있었다"며 "2년 전 강씨로부터 토종닭 두 마리를 산 적이 있다"고 말했다.

당수동 축사 이웃주민은 "최근까지 당수동 축사 근처에서 양봉을 했다"면서 "축사 창고에 있는 설탕은 벌통에 넣기 위해 사용하던 것"이라고 말했다.

또 다른 주민은 "하루 한번 꼴로 축사에 들렀지만 가축 분뇨가 그대로 있을 정도로 축사운영에는 관심 밖이었다"고 전하기도 했다.

이들의 말을 종합하면 강은 2005-2006년부터 반월저수지 주변에서 개와 토종닭을 키우며 자신이 양봉한 꿀과 외지에서 가져온 옥수수, 칡즙 등으로 여행객과 낚시꾼들을 상대로 장사를 했던 것으로 보인다.

아울러 그는 첫 범행 무렵부터 범행 공백기를 포함해 최근까지 충남 고향마을을 수시로 찾아 머물다 간 것으로 전해졌다.

안산에서 서천까지는 서해안고속도로를 타면 1시간이면 갈 수 있는 거리다.

고향마을 주민은 "(강이) 드문드문 고향집에 오는 것이 아니라, 수시로 찾아왔다"며 "한번 오면 하룻밤 머물다 새벽에 나갈 때도 있고, 며칠 씩 머물다 갈 때도 있어 예사롭게 생각했다"고 말했다.

경기도에서는 유사 사건이 발생하지 않던 범행 공백기 그는 서천을 뻔질나게 다녔다.

관리하는 축사에는 가축 분뇨가 그대로 있을 정도로 관심이 없었다.

경기도 지역에서 경찰의 수사가 강도 높게 진행돼 범행을 중지했다는 강이 서천을 길을 오가며 마주치는 주민들을 보며 무슨 생각을 했을지 걱정하게 한다.

그는 주소지를 28년간 17차례나 옮겼고 그 중 네 번은 실제 거주하지 않은 사실이 적발돼 주민등록이 말소되기도 했다.

이런 그의 행적과 에쿠스, 무쏘, 리베로 등 3대의 차량을 소유한 사실로 미뤄보면 그는 탁월한 지리감각을 가졌고 안산 팔곡동과 수원 당수동, 서천 고향집을 수시로 오가면서 범행을 저지른 것으로 추정된다.

(안산연합뉴스) 김경태 이우성 기자 ktkim@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