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호순 사건을 접하고는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없을까 하는 생각부터 들었어요. "

검찰 '큰언니' 조희진 부장검사는 주먹을 불끈 쥐어 보였다. 현직 여검사 가운데 최고참이지만 아직도 불의한 범죄 사건을 접하면 피가 끓는다는 것.그래서일까. 후배들을 보면 걱정이 앞선단다.

"검사는 남녀를 불문하고 사건을 파헤치겠다는 열정이 필요해요. 특히 여검사들은 검사가 공직이어서 안정적이라는 생각보다는 끝까지 공직자로서 봉사하겠다는 소명의식을 가져야 합니다. "

올해 신규 임용되는 112명의 검사 중 여성이 58명으로 51%를 차지해 여성 비율이 절반을 넘어섰다. 여검사 신규 임용 비율이 50%를 넘은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하지만 이런 양적인 성장이 곧바로 여검사들의 위상 제고로 이어질 수 있을까. 조 부장을 비롯한 여검사 1세대들은 앞으로 풀어야 할 과제가 적지 않다고 입을 모은다.

1993년은 검찰 역사에 한 획을 그은 해였다. 그 해 여자 검사가 한꺼번에 3명이나 탄생했기 때문.사법연수원 22기 동기인 이영주(현재 대검찰청 형사2과장),박계현(사법연수원 교수),김진숙(사법연수원 교수) 검사가 주인공이었다.

그 당시 여검사라곤 조 부장(서울고검 부장),최윤희(건국대 로스쿨 원장),이옥(서울중앙지검 공판2부장) 검사 등 3명이 전부였다. '여자 검사'라는 사실만으로도 법조계에서 떠들썩하던 때였다.

대검이 생긴 이래 첫 여성 과장으로 임명된 이 검사는 "검사 임관 당시에는 검찰 조직 내에서 여자 검사가 어떻게 성장해야 할지에 대한 로드맵이 없었다"고 돌아봤다.


16년이 흐른 지금 검찰도 많이 바뀌었다. 검찰은 더 이상 '금녀(禁女)의 구역'이 아니다. 오히려 치밀하고 섬세한 수사력을 필요로 하는 검사 직이야말로 여성에게 딱이라는 게 알파 걸들의 주장이다.

하지만 선배 여검사들은 "아직 멀었다"며 불만이다. 검찰 내에서 여검사를 보는 시각도 크게 바뀌지 않았다는 것.

김 검사는 "최근 여검사들이 급증하고 있지만 관리자급은 거의 없어 사실상 여자 검찰은 '피라미드 구조'"라고 말했다.

여자라고 해서 여성 사건을 전담케 하거나 일반 사건을 맡는 형사부에 보내야 한다는 고정관념을 깨야 한다는 지적이다. 실제 검찰 내 요직인 대검과 법무부에는 이 검사와 노정연 검사,임은정 검사 정도가 포진해 있을 뿐이다.

결국 남자 검사들과 맞설 수 있도록 실력을 키우라는 것이 이들의 주문이다. 조희진 검사는 "선배 여검사들은 '여성성'을 버렸기 때문에 이 자리에 올라올 수 있었지만 후배들은 여성성을 지키면서도 자신만의 고유한 색깔을 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또 "밤을 새우기 일쑤여서 기력 소모가 많은 특수부,공안부 등에서 여검사가 두각을 나타내려면 평소에 실력과 체력을 닦아 놔야 한다"고 조언했다.

여검사가 수적으로 늘어나면서 벌써부터 긍정적인 신호들이 속속 나타나고 있는 점은 고무적이다. 특히 폭탄주로 대표되던 회식 문화의 변화가 그 상징이다. 연극이나 영화,콘서트 등을 관람한 뒤 간단히 맥주 한 잔 하고 끝내는 경우도 많다고.

조 부장은 "의정부지검에 있을 때는 상부에서 배려해 줘서 여성들에게 술을 아예 권하지도,먹이지도 않았다"고 회상했다.

서울중앙지검 금융조세조사1부 검사 출신의 김학자 변호사는 "남자 검사는 통할 것 같고 여검사는 깐깐하다고 생각하는 피의자들이 늘어난 것 같다"며 "여검사의 경우 부드럽게 조사하되 원리원칙대로 적법 절차를 지키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언니' 검사들은 "사회에 대한 폭넓은 관심과 다양한 시각을 갖춘 후배 여검사들이 많아졌으면 좋겠다"고 입을 모았다.

김정은 기자 likesmil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