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형 로펌 출신의 전직 고위 관료들이 정부와 공공기관의 요직으로 돌아오고 있다. 국내 최대 로펌인 김앤장의 고문이었던 한승수 국무총리를 비롯해 이강국 헌법재판소장(태평양),김경한 법무부 장관(세종),김종창 금융감독원장(광장) 등 고위 공직자들이 로펌에 몸담았던 경력을 갖고 있다. 최근에는 김앤장 고문인 윤증현 전 금융감독위원장이 기획재정부 장관에 내정됐다. 태평양의 고문 명함을 갖고 있던 이석채 전 정보통신부 장관도 KT 사장으로 자리를 옮겼다. 차기 국세청장으로 유력하게 거론되는 인사 중 한 명인 오대식 전 서울지방국세청장 역시 현 태평양 고문이다.

이 같은 현상을 놓고 토종 로펌의 경쟁력 강화와 인재의 활용 차원에서 필요하다는 주장과 로비와 편향된 정책 결정 등의 부작용을 우려하는 반론이 부딪치고 있다.


◆정부와 대형 로펌 사이의 회전문

퇴임 후 재기를 꿈꾸는 관료들 입장에서는 이미지 관리상 사기업에 몸을 담기는 부담스럽기 때문에 이력상 하자가 없는 로펌 고문직이 매력적인 자리다. 로펌 입장에서도 영향력이 여전하고,언제 고위직으로 재기용될지 모르는 전직 관료들이 매력적인 영입 대상이다.

한 변호사는 "로펌이 거액을 지불하면서까지 이들을 영입하는 이유는 출신 기관의 사건을 유치하는 것은 물론 인 · 허가 과정 개입과 정보 수집 등에서 역할을 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로펌들이 세금 · 공정거래 · 금융 · 증권 · 특허 · 통상 · 세관 · 정보통신 등 주로 경제 분야의 전공을 가진 전직 관료들을 선호하는 것도 이 때문이라는 것.최근 국세청에서 퇴임한 정병춘 차장,김갑순 서울지방국세청장,조성규 중부지방국세청장 등을 영입하기 위한 대형 로펌 간의 경쟁도 치열한 것으로 알려졌다.

◆엇갈리는 찬반 양론

현행 공직자윤리법(제17조)은 4급 이상 고위 공무원의 경우 퇴직 직전 3년 동안 근무한 부서의 업무와 밀접한 관련이 있는 영리 사기업체에 퇴직 후 2년간 취업할 수 없도록 하고 있다. 그러나 대부분의 로펌은 이런 법망 바깥에 있다. 시행령 33조에서 정한 사기업체 기준인 '자본금 50억원 이상에 외형 거래액 연간 150억원 이상'에 걸리지 않기 때문이다. 태평양 같은 유한법인의 경우 설립에 필요한 최소 자본금이 5억원에 불과하다. 조합원들이 출자한 김앤장 합동법률사무소는 아예 자본금 자체가 없다. 참여연대 행정감시팀의 이재근 팀장은 "허점이 많은 공직자윤리법을 이용하는 일부 대형 로펌과 이들을 아무 거리낌없이 국정 책임자로 임명해 '돌려쓰기'를 하는 정부 모두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김성태 홍익대 법대 교수는 "취업 제한 등의 규정을 좀더 강화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전직 관료들도 품위 유지를 해야 하고 직업선택의 자유도 존중해야 한다는 지적에 대해 민주당 김동철 의원은 "강의 등 사회봉사 활동을 하다가 정부로 복귀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밝혔다.

그러나 로펌 측은 법률시장 개방까지 앞둔 상황에서 인위적인 '진입 장벽'을 두는 것은 옳지 않다고 주장했다. 대형로펌 소속의 한 변호사는 "각 분야의 전문 지식과 현장감을 두루 갖춘 전직 관료들은 국내 로펌들의 법률 서비스 질 향상에 크게 기여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또 정부로 재복귀하는 것은 유능한 인적 자원을 재활용한다는 측면에서 긍정적이라고 강조했다.

서욱진/김정은 기자 ventur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