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쪽이나 북쪽이나 설을 쇠는 모습이 비슷한데 주로 여자들이 고생한다는 점도 똑같네요."(탈북자 이모씨)

"평상시에는 배고픔에 시달리지만 설만큼은 좋은 음식을 준비해 가족끼리 나눠 먹으면서 즐거운 시간을 보냅니다."(탈북자 김모씨)

북한도 설(음력 1월1일)은 정월대보름, 추석 등과 함께 '민속 명절'로 정해 연휴를 보낸다.

북한은 1967년 "봉건 잔재를 뿌리뽑아야 한다"는 고 김일성 주석의 지시에 따라 민속 명절을 없애고 양력 설만 인정했었다.

그러나 1972년 추석 성묘를 허용한 데 이어 1989년 음력 설을 민속 명절로 지정, 하루를 쉬게 했다가 2003년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음력 설을 양력 설보다 크게 쇠라"고 지시해 설 당일부터 사흘간 쉬도록 했다고 조총련 기관지 조선신보는 보도했었다.

그러나 이틀 쉰다는 탈북자들의 말도 있으며, 실제로 올해 북한의 달력엔 일요일인 25일과 설 당일인 26일만 '빨간 글씨'로 돼 있다.

탈북자들에 따르면 북한의 설 풍경은 남한과 크게 다르지 않다.

가족들은 설 아침 한자리에 모여 어른들에게 세배하고 덕담을 나누며, 가족끼리 장기, 윷놀이 등 민속놀이를 하거나 공원, 유원지, 공연장 등을 찾는다.

북한 전역에서 윷놀이와 씨름 등 민속놀이 경기와 바둑 대회 등이 열리고 문화회관이나 극장에서는 예술단체의 공연도 벌어진다.

특히 평양 만경대학생소년궁전에서는 당.군.정 간부와 북한 주재 외교사절, 국제기구 대표들이 초청된 가운데 학생.소년들이 대규모로 참여하는 설맞이 공연이 열린다.

음식점이 밀집한 평양시 창광거리에는 가족 단위의 외식 인파가 몰린다.

유명 음식점으로 옥류관은 평양냉면, 고기쟁반국수, 산적, 녹두지짐이, 청류관은 오곡밥과 약밥, 전골과 신선로 요리가 대표 메뉴다.

거리에는 북한 국기, 사회주의의 상징인 붉은 기와 함께 '세배', '민속 명절', '음력 설'이라는 글귀나 선전물이 내걸리고 건물이나 가로수에는 각종 조명장치를 설치해 분위기를 돋운다.

2003년 탈북한 김모(42.여)씨는 "설이 되면 떡을 준비하고 돼지고기를 삶아 끓인 고깃국과 쌀밥을 먹는다"며 "가족이 모이면 남자들은 장기를 두고 여자들은 윷놀이를 하며 시간을 보낸다"고 말했다.

김씨는 "남한에 비하면 경제적으로 많이 어렵지만 설 분위기는 북한이 더 좋은 것 같다"며 "남한은 이웃끼리 얼굴도 잘 모르지만 북한에선 동네 사람들이 마주치면 서로 웃으면서 인사를 나누고 덕담을 주고 받는다"고 덧붙였다.

북한에서 20여년간 대학교수로 지내다 2004년 탈북한 이모(61.여)씨는 "예전에는 명절이 되면 찹쌀 같은 것을 500g이나 1㎏가량 배급해 설 전날 방앗간 앞에서 밤을 새가며 줄을 서서 떡을 기다리는 모습을 흔하게 볼 수 있었다"고 말했다.

그러나 "요즘은 경제난 때문에 배급이 잘 안 돼 장마당(시장)에서 물건을 구하는 경우가 많고 이 때문에 남한처럼 '빈익빈 부익부'가 심해지고 있다고 한다"고 이씨는 말하고 "예전보다는 '있는 집'과 '없는 집'의 설맞이 분위기에 차이가 많이 날 것"이라고 덧붙였다.

한 개성공단 업체 관계자는 24일 "요즘 남북관계가 워낙 경색돼 있어 설이라고 해서 특별한 행사를 가질 계획은 없다"며 "식당에서 떡국을 준비해 근로자들에게 대접하는 정도로 조촐하게 설을 보낼 생각"이라고 말했다.

(서울연합뉴스) 임주영 기자 zoo@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