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장 경제를 움직이는 추동력의 근본은 개인의 이기심이다. 각자 자신의 이익을 추구하여 벌이는 행동이 나라 경제를 꾸려 가는 것이다. 그런데 사람마다 자기 이익만 생각하고 행동하다 보면 남에게 해를 끼치는 일도 마다하지 않는다. 급전이 필요한 서민이 집을 내놓으면 사정을 짐작한 투기꾼이 사정 없이 값을 후려치기도 하고,정성 들여 모셔온 고객을 터무니없이 싼 가격으로 유혹하여 빼내 가기도 한다. 시장 경제가 동력으로 삼는 이기심은 남에 대한 배려는 전혀 없이 오직 나만을 생각하고 내 이익만 챙기는 것이다. 시장 경제가 이렇게 몹쓸 체제라면 도대체 왜 세계 거의 모든 나라들이 시장 경제를 채택하고 있는 것일까?

자신의 이익을 챙기는 방법은 기본적으로 두 가지이다. 하나는 남의 것을 빼앗아서 자기 것으로 만드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남들이 원하는 일을 해 주고 대가를 받는 것이다. 남을 위해 일하고 자신의 이익을 얻는다면 문제 될 것이 전혀 없다.

그러나 약탈과 사취는 남의 것을 빼앗고 속여 훔치는 짓이며 편승은 아무 기여도 하지 않았으면서 이익 분배에 끼어드는 짓이다. 이런 행동은 결국 다른 사람의 재산권을 유린하는 행동이다.

이기심은 남의 재산권을 유린할 수 없어야만 남을 위해 일하고 이익을 얻으려 한다. 재산권 유린을 막는 재산권 보호는 정부의 책임이다. 재산권 보호로 이기심을 통제하면 사람들은 서로 도와 가면서 이익을 얻을 수밖에 없다. 시장 경제가 의존하는 것은 단순한 이기심이 아니라 정부의 재산권 보호라는 멍에를 얹은 이기심이다. 그동안 사람들이 시장에서 재산권을 일방적으로 유린당해 오기만 했다면 아무도 시장을 이용하지 않았을 것이고 시장은 소멸했을 것이다. 현실의 시장이 번성하고 있다는 사실은 재산권 보호가 그런 대로 되어 왔음을 뜻한다.

그런데 재산권 보호는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우선 누구의 것인지를 잘 판정해야 한다. 누가 보아도 누구의 것인지가 분명한 경우라면 판정이 쉽고 재산권 보호도 쉽다. 예컨대 처음부터 끝까지 나 홀로 만든 것이라면 그 물건은 분명히 나의 것이고 남들도 그렇게 인정한다. 그런데 누구의 것인지를 분명히 말하기 어렵다면 보호 대상이 분명하지 않고 따라서 보호하기도 어려운 것이다. 정부가 재산권을 제대로 보호하지 못하면 그 시장은 부진하게 마련이다.

여럿이 참여한 분업의 생산물은 사전 계약에 따라서 재산권이 결정된다. 계약 시행이 어려우면 재산권 보호도 어렵다. 금융 계약은 항상 사기 위험을 부담해야 하고 보험 사고도 고의성을 조사해야 한다. 분업이 고도화할수록 계약도 복잡해지고 재산권 보호도 어려워진다.

개도국 금융시장이 부진한 것은 저축이 모자라 자금이 근소한 탓도 있지만 개도국 정부가 금융 자산의 재산권 보호에 미숙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시장은 정부의 재산권 보호 능력에 비례하여 발달하는 것이다.

서울대 경제학과 교수 shoonlee@snu.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