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시절엔 명절이 빨리 돌아오기만을 기다렸다. 그중에서도 제일 큰 명절이 설이다. 추석 때는 어른들이 따로 용돈을 안 주어도 설에는 세배를 하면 작은 돈이라도 세뱃돈을 주었다. 그것이 우리에겐 기쁨이었고 축제였다. 어린 눈으로 보아도 명절의 가장 큰 준비는 먹는 준비와 입는 준비였다. 요즘이야 철마다 수시로 옷을 사 입히니 따로 그런 것에 신경 쓸 일도 없지만,우리 어린 시절엔 아이들도 은근히 기대하고 어른들도 없는 살림에라도 꼭 신경쓰는 게 설빔이었다. 어른들은 새옷을 입지 않아도 아이들은 입혔다. 설날이 다가오면 집집마다 어머니의 손길은 더욱 바쁘다. 설에 쓸 음식을 하나하나 집에서 준비했다.

그 가운데 가장 신나는 것은 엿을 골 때와 떡을 만들 때였다. 모처럼 명절이라 쌀엿을 고기도 하고,입에 넣으면 그야말로 살살 녹는 수수엿을 고기도 하고,강원도에 많이 나는 옥수수 엿을 고기도 한다. 명절이 다가오면 집집마다 음식을 장만하는데 그때 가장 많이 사용하는 게 바로 가마였다. 평소에는 짚을 썰어 쇠죽이나 끓이던 가마에 두부를 끓이고,엿을 고고,떡을 찐다. 첫새벽에 일어나 쇠죽 한번 끓여 퍼낸 다음 오후에나 저녁 때까지 그 가마를 이용해 다른 음식을 만든다.

아침부터 불을 때기 시작한 가마솥의 엿물이 오후가 돼 서서히 줄어들기 시작하면 누가 부르지 않아도 저마다 밖에서 놀던 어린 형제들이 하나둘 부엌으로 모여든다. 얼음판에 나가 놀던 형도 들어오고 뒷동산에 올라가 연을 날리던 동생도 엿물이 줄어드는 시간만큼은 서로 귀신처럼 안다. 동네 다른 여자아이들과 고무줄놀이를 하던 여동생도 어느새 부엌에 와 있다. 다들 가마 아궁이 앞에 제비새끼처럼 나란히 쪼그리고 앉아 발그스레한 얼굴로 아궁이 속의 불을 보고,또 목을 한껏 늘여 가마 속 졸아드는 엿물을 바라보았다.

설날도 축제지만 이미 여러날 전부터 그것을 준비하는 하루하루가 우리에겐 축제인 것이다. 지금은 시장에서 모두 사서 쓰는 산자와 약과도 집집마다 어머니들이 만들었다. 설날에는 떡도 여러 종류를 했다. 우선 함지 가득 인절미를 만들어 광에 보관하고,절편이라고 부르는 흰 쌀떡도 한 함지 만들고,떡국으로 쓸 가래떡도 함지 가득 방앗간에서 만들어온다. 그리고 겨우내 간식으로 먹을 취떡을 만든다. 취떡은 쌀떡에 취를 넣어 쑥떡보다 조금 검은 색이 난다. 이 떡들을 명절이 지난 다음 형제들이 화롯가에 빙 둘러앉아 저녁마다 구워 먹었다.

어른들은 음식준비로 바쁘고,아이들은 연신 동구밖으로 들락날락하며 객지에 나가 있다가 명절을 맞아 지금 우리처럼 고향으로 돌아오는 형과 누나와 삼촌과 고모를 기다린다. 어느 집 자손이든 양손 가득 선물을 들고 오는 아들딸들은 가족들의 옷이며 새로 나온 전기밥통이며 전기요를 사 들고 걸음걸이도 씩씩하게 동네에 들어섰다. 그런 아저씨들과 형들과 누나들은 서울이든 부산이든 그들이 떠난 길이 아무리 멀다 해도 다들 해 떨어지기 전에 마을 안으로 들어왔다. 어머니 아버지에게 드릴 내복과 담요 밥통을 사오고,동생과 조카에게 줄 옷보따리도 부피가 만만치 않다. 마을의 그런 풍경만으로도 어린 우리까지도 마음이 넉넉해지곤 했다.

설날 아침이면 집에서 차례와 어른들께 세배를 드린 다음 점심 때부터 저녁 때까지는 같은 마을의 대소가 어른들께 세배를 드리러 다녔다. 지금도 내 고향마을은 400년 전통의 대동계가 그대로 전해져 내려오는 마을이라 설날 다음 날인 초이튿날이면 온 동네 사람이 촌장님댁에 모여 촌장님께 합동세배를 드린다. 어떤 사람들은 아직도 그런 전통을 지키는 게 불편하지 않느냐고 묻는데,그래도 그런 합동세배를 통해 평소엔 잘 찾아뵙지 못하는 마을 어른들께도 인사하고 또 선후배가 한자리에서 만난다.

단지 그것이 명절이어서만 즐거운 게 아니었다. 바쁜 도시생활을 하다 며칠만이라도 고향에 돌아와 부모님 얼굴을 뵙고,또 형제들이 마주앉아 서로의 삶을 위로하고 걱정하고 격려한다. 그리고 우리는 그렇게 모든 식구와 형제들이 모여 정을 나누고 마음을 나누는 것에서 우리 삶의 큰 위안과 평화를 얻는다. 고향에 내려가 명절 차례를 지내고 어른들과 친구들을 만나고 오는 것만으로도 고향을 떠나 대처에 나와 살며 알게 모르게 우리 삶에서 소중한 것들을 잊고 살거나 놓치고 산 것들을 되돌아보는 것이다.

젊은 사람들은 모두 먹고 살 길을 찾아 대처로 떠났다고 해도,그래도 명절에 고향에 가 보면 정다운 얼굴과 정다운 산천이 그곳에 있다. 고향엔 어른들만 그곳을 지키고 있는 게 아니다. 무엇보다 어린날 그곳에서 놀며 우리도 모르게 어느 길섶에 하나하나 흘리고 온 추억들이,우리를 낳아주시고 길러주신 어른들과 함께 우리를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