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성 25시간만에 이례적 특공대 투입

서울 용산 재개발 지역에서 농성중이던 주민들의 강제진압 과정에서 22명의 사상자가 발생한 가운데 경찰이 굳이 진압을 서두른 이유를 둘러싸고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경찰은 통상 이런 일이 발생하면 협상 전문가를 현장에 투입해 대화 위주로 상황을 풀어가다가 더 이상 타협의 여지가 없다고 판단될 경우 마지막 카드로 강제진압 전략을 구사해 왔다.

전국적으로 철거민들의 농성이 수개월씩 장기화되는 계속되는 경우를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는 것은 이 때문이다.

하지만 경찰은 이번에 용산 재개발 주민들이 농성에 돌입한지 불과 25시간만에 특공대를 투입하는 초강수를 뒀다.

그것도 농성자들이 화염병 등으로 무장하고 있어 인명피해가 예견되는 상황이었다.

이와 관련, 경찰 주변에서는 이틀 전 차기 경찰청장으로 내정된 김석기 서울경찰청장이 신속한 진압작전을 통해 자신의 '능력'을 과시하려는 마음에 무리수를 둔 것이 아니냐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철거민들이 극렬하게 저항하긴 했지만 대테러 임무를 수행하는 경찰특공대를 투입할 정도로 급박한 상황이 아니었다는 점도 이런 관측을 뒷받침하고 있다.

한 경찰 관계자는 "어떤 상황이든 대화를 앞세우는 것이 당연하지 무작정 진압에 나서는 법은 없다"면서 "어떤 사정이 있었겠지만 이번 사태는 확실히 이례적인 상황"이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백동산 용산경찰서장은 20일 낮 용산서 대강당에서 열린 브리핑에서 "불법 행위를 묵과할 수 없어 경찰을 투입했다"고 주장했다.

철거민들이 경찰과 행인에게 새총으로 유리구슬과 골프공을 쏘고 화염병을 던져 주변 상가와 건물에 불이 났으며 채증을 위해 나선 경찰을 폭행하는 상황에서 어쩔 수 없는 결정이었다는 것이다.

백 서장은 또 "19일 열린 일선 대책회의에서 진압 결정이 났다"고 말했다.

그는 그러나 이번 진압작전을 누가 최종 승인했는지, 시경에서 별도의 지시가 있었는지 등에 대해서는 입을 굳게 다물었다.

하지만 경찰은 이번 진압작전이 불가피한 선택이었다는 해명에도 불구하고 사회적 취약계층인 철거민들을 대상으로 무리하게 병력을 투입해 대형 인명피해를 유발했다는 비난은 피해갈 수 없게 됐다.

특히 이번 사태를 둘러싸고 책임공방이 벌어질 경우 김석기 서울청장이 책임론의 중심에 설 수 밖에 없을 것으로 보인다.

(서울연합뉴스) 황철환 기자 hwangch@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