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자치구 `단속 수입' 90억..홍보비는 `쥐꼬리'

"담배 한 갑이 2천500원인데 꽁초를 버리다 한번 걸리면 5만 원을 물어야 합니다.이걸 숨어서까지 단속하는 게 말이 됩니까."

현재 우리나라 성인 흡연율은 남성 42%, 여성 5%로, 평균 23%로 알려져 있다.

성인 5명 중 1명 이상이 담배를 피우고, 특히 남성으로만 치면 거의 2명 중 1명이 흡연자라는 얘기다.

그럼에도 금연구역 확대 등으로 흡연자들의 설 자리는 갈수록 좁아지고 있다.

특히 `길거리 흡연 금지 법안'으로 불리는 국민건강증진법 개정안이 국회에서 논의 중이어서 흡연자들의 입지는 더 좁아질 것으로 전망된다.

이런 상황에서 서울 자치구들이 꽁초무단 투기를 무차별적으로 단속하는 것에 대한 불만의 목소리가 흡연자들 사이에서 커지고 있다.

흡연자들은 각 구청이 적극적인 홍보를 하지 않은 채 사실상 `함정단속'을 일삼고 있다며 대책 마련을 촉구하고 있다.

◇ `함정단속'에 민원 빗발 = A(29.회사원) 씨는 지난 9일 오후 1시께 서울 강남구의 한 식당에서 점심을 먹고 나서 담배를 한 개비 꺼내 물었다.

담배를 피우며 30여m가량 떨어진 근무처 앞에 도착한 A씨가 꽁초를 도로변에 있는 배수구에 던진 순간, 60대로 보이는 남자가 불러세웠다.

그는 현행법을 위반했으니 `딱지'를 떼겠다며 신분증을 보여달라고 했고 A씨는 10여 분가량 실랑이를 벌이고 사정한 끝에 `위기'를 모면할 수 있었다.

A씨는 "배수구에 꽁초를 버리는 것이 불법이라는 생각을 미처 하지 못했다"며 " "현행법을 위반한 것은 잘못이지만 꼭 함정단속에 걸린 것 같아 기분 나빴다"고 말했다.

당시 단속원은 평상복 차림에 `강남구청'이라고 적힌 작은 배지 하나만 달고 있어 일반인과 거의 구별되지 않았다고 했다.

사실 단속을 담당하는 각 구청 민원게시판에는 버스정류장 주변 배수구나 공사장 쓰레기더미 등에 무심코 꽁초를 버렸다가 5만 원짜리 `딱지'를 떼인 `끽연가'들의 설움 섞인 글들이 끊이지 않고 있다.

김모 씨는 모 구청 게시판에 올린 항의 글에서 "대로변 인도에서 꽁초를 버리려 주변을 살폈지만 휴지통이 없어 주변 공사장의 쓰레기더미 위에 버렸는데 단속에 걸렸다"며 불만을 제기했다.

조모 씨도 "단속원 두 명이 신분도 제대로 밝히지 않고 검문하는 사람처럼 위반증을 끊었다"며 "주변에서는 홍보물이나 경고문도 전혀 찾아볼 수 없었다"고 역시 볼멘소리를 했다.

한 구청 관계자는 이에 대해 "꽁초를 길거리에 버리면 안 된다는 것은 상식 아니냐"며 "더욱 적극적인 단속을 펴나갈 계획"이라고 말했다.

◇`꽁초단속 수입' 90억에 홍보비는 `쥐꼬리' = 흡연자들이 꽁초를 아무 데나 버리는 문화를 바꾸려면 이를 막을 환경도 조성해야 한다는 지적이 일고 있다.

적극적인 홍보와 계도 노력을 기울이고, 꽁초를 버릴 수 있는 쓰리기통도 곳곳에 설치해야 한다는 것이다.

서울시내 길거리에 꽁초를 버리는 행위가 `불법화'된 것은 1994년 폐기물관리조례가 만들어지면서부터.
자치구들은 이를 전가의 보도처럼 앞세워 꽁초 투기 행위를 적극적으로 단속하고 있다.

담배꽁초 투기에 대한 단속은 2006년말부터 이를 본격화한 강남구가 원조다.

강남구가 서울시의 우수사례로 뽑힌 이후 담배꽁초 투기 단속은 2007년 상반기부터 전 구청으로 확대됐다.

그러나 올해로 집중단속 3년 째를 맞고 있지만 담배꽁초 투기건수는 오히려 늘어났다.

꽁초 무단투기에 대한 집중단속 `원년'인 2007년 서울시 전체 단속건수는 19만2천270여 건으로 징수액은 80억940여 만원이었다.

그러나 2008년 단속건수는 20만5천985건으로 늘었고, 징수액도 10억원 이상 증가한 90억430여 만원으로 집계됐다.

각 구청이 꽁초 투기를 근절하려는 노력보다는 오히려 수입을 올리는 데만 골몰한 것 아니냐는 지적을 피할 수 없는 대목이다.

실제 각 자치구의 꽁초 단속 예산은 서울시 전체로 따져볼 때 2008년 31억9천여만원, 2009년 45억3천여만원이었지만 대부분이 단속반 인건비, 신고포상금이었을 뿐 홍보비용은 4천120여만원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

한 구청 관계자는 "현재 전광판 등을 통해 홍보하는 정도"라며 "특별히 홍보 예산이 따로 책정돼 있지도 않고, 따로 홍보할 계획도 없다"고 말했다.

단속원 채용 계약서에 하루 의무건수를 채우도록 명시하는 등 사실상 파파라치 제도와 비슷한 형태로 단속을 벌이는 것도 문제점으로 지적된다.

서울시 관계자는 "여론조사 결과 흡연자들을 위한 휴지통을 늘려야 한다는 의견이 우세했다"며 "현재 약 5천여 개 수준인 시내 휴지통을 7천600개로 확대해 500m(도보로 7∼8분 거리) 간격으로 설치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서울연합뉴스) 이준삼 기자 jslee@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