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 고기를 잡기 위해서는 잡은 고기를 놔 줘야 하는 법이야."

미국의 한 지방검찰청에서 30대 초반의 여검사와 나이가 지긋한 부장검사 간 말다툼이 벌어졌다.

마약에 취해 아무 죄도 없는 모녀를 총으로 사살한 남자가 그 지역 마약계의 거물을 잡아들일 수 있는 증언을 가지고 '거래'에 나섰기 때문.

강직한 여검사를 주인공으로 한 미국 법정드라마 '클로스 투 홈'에 나오는 내용이다.

대검찰청이 수사의 효율성을 높이기 위해 도입을 추진하고 있는 플리바게닝제(유죄인정심사제),면책조건부 진술제(사법협조자 형벌감면제)를 운영하고 있는 미국이 겪는 딜레마를 잘 보여 준다.

대검이 플리바게닝과 같이 피고인의 자백을 활성화하는 제도를 추진하고 있는 이유는 크게 두 가지다. 무엇보다도 효율적이고 집중적인 수사가 가능하다는 것.

법무법인 세종의 이용성 변호사는 "명백히 자백한 사건을 굳이 재판까지 해서 피고인의 생업에 지장을 주는 현 절차는 불합리한 측면이 있다"며 "법원의 승인 등 감독기관이 있다는 전제하에 도입하는 게 좋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또 다른 이유는 내부 고발이 없으면 수사하기 어려운 뇌물,부정부패,조직범죄 사건의 수사 편의를 위해서다.

면책조건부 진술제를 도입하면 범행에 소극적으로 가담한 사람들이 처벌을 두려워해 함구하는 사건에 대한 수사가 한결 용이해질 수 있다.

그러나 이에 대한 반발도 만만치 않다. 무엇보다 사법 정의상 맞느냐에 대한 문제다. 1982년부터 3년 동안 48명의 여성을 죽인 연쇄 살인범 게리 리지웨이 사건은 플리바게닝 제도가 직면한 한계를 잘 보여 준다.

사형을 면하게 해 주는 조건으로 자백을 받아 냈다. 그의 자백을 통해 100명 이상의 여성 피해자가 더 드러났다.

그러나 1~2명을 살해하고도 사형 선고를 받을 수 있는 미국에서 수백 명을 죽인 살인광을 종신형에 처한 것은 문제가 있지 않느냐는 비판 여론이 일었다.

플리바게닝은 또 허위 자백을 남발하게 할 우려도 있다. 법무법인 율촌의 한 변호사는 "검찰은 지금도 혐의를 잡고 수사를 시작하면 광범위한 압수 수색과 소환 조사를 통해 충분한 수사를 할 수 있는데 플리바게닝까지 도입하면 근거 없는 모함 등으로 선의의 피해자가 생길 수 있다"고 지적했다.

검찰이 정치적으로 남용할 가능성도 제기된다. 자백하는 사건에 한해 형량을 낮춰 줄 수 있게 되면 힘있는 정치인이나 검찰 관계자 등에 대한 처벌은 어려울 수 있다고 법조계 관계자들은 지적한다.

박민제 기자 pmj53@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