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부 계원 곗돈만 챙기고 다단계에 기웃

['한아름회' 50代 계주 인터뷰] "강남契 30~50개씩 가입…돌려막기하다 터져"
지난 9일 밤 10시께 한 여성에게서 전화가 걸려왔다. 강남계인 '한아름회' 계주라고 소개한 조모씨(51)는 다급한 목소리로 "강남 역삼동 R호텔에서 만나줄 수 없냐"고 했다.

밤 11시부터 1시간여 동안 계속된 인터뷰에서 그는 "다단계로 돈을 떼인 이모씨 등 일부 계원들이 곗돈을 타먹은 뒤 계를 깨려고 한다"며 발을 동동 굴렀다.

서초동의 한 오피스텔을 사무실로 쓰고 있는 조씨는 계원들이 매달 타가는 곗돈이 1억~2억원인 계를 5개가량 운영한다. 계주가 모아주는 곗돈 액수만 월 8억~10억원.회원 숫자는 50여명이라고 했다.

계주가 372억원(경찰 추산)의 곗돈을 떼먹고 계원수가 450명에 이르는 다복회와 계 운영 방식이나 규모면에서 비교할 수 없지만 '강남계'로 불릴 만했다.

조씨는 이모씨 등 6명이 가입한 계와 매월 불입 내역 및 곗돈을 타간 사실이 일목요연하게 기재된 서류들을 보여줬다.

이씨는 2008년 3월 2억원짜리 계에 가입해 1번으로 타가는 등 가입 7개월 만에 6억9400만원의 곗돈을 타갔다. 그 사이 이씨가 불입한 금액은 4억1261만원.하지만 그 이후로는 곗돈을 한푼도 붓지 않고 있다.

이씨와 비슷한 시기에 가입한 박모씨와 김모씨 등도 비슷한 수법으로 선순위로 곗돈을 챙긴 뒤 연락이 두절됐다는 게 조씨 주장이다.

1999년부터 강남에서 11년째 계를 운영하고 있다는 조씨는 "그동안은 큰 문제 없이 잘 운영돼 왔는데 이씨 등이 2007년 이후 계에 가입하면서 문제가 불거졌다"고 말했다. 또 "이씨 등은 다단계에서 떼인 돈을 만회하기 위해 계에서 타간 돈으로 재차 H다단계 등에 붓다 탈이 난 것으로 알고 있다"고 덧붙였다.

일부 계원이 연체하자 다른 계원의 불입금을 담보로 제공토록 강요한 뒤 순번이 된 그 계원에게 곗돈을 지급하지 않고 있다는 지적에 대해선 "담보 설정은 계의 기본"이라고 일축했다.

'강남귀족계'라는 이름으로 강남의 계가 도매금으로 넘어가는 것이 조씨의 가장 큰 불만인 것 같았다. 특히 고위 공직자와 판 · 검사 부인들,연예인 등 유명인들이 대거 가입한 다복회와 달리 자신의 계는 "서민은 아니지만 강남 중산층들의 모임"이라고 강조했다.

"계원 관리를 위해 골프 접대까지 하는 다복회를 어떻게 따라갈 수 있겠어요?" 인터뷰에 동석한 계원 K씨가 거들었다. 그에 따르면 골프 실력이 한때 80대 초반까지도 쳤다는 다복회 계주 윤모씨는 내기골프를 통해 수백만원씩 잃어주고 식사 대접도 곁들인다고 한다. 호텔 로비에서 인터뷰를 하는 동안 조씨에게도 호텔 직원들이 아는 체를 하며 깍듯이 인사했다. 호텔 고급 레스토랑이나 식당에서 주로 계모임을 갖기 때문에 계주는 숙박 및 음식점업계에선 큰손이다.

K씨는 다복회 말고도 S회 L회 등 다른 계에 가입한 계원증을 보여주었다. 그가 붓고 있는 계는 현재 30개.그러나 다복회 계원들은 보통 50개의 계에 가입해 있다고 한다. 1개 계에 500만원씩만 부어도 월 2억5000만원이 필요하다. "A계에서 탄 곗돈을 B계에 넣고,다단계조직이나 사채업자들이 비싼 이자 준다니까 거기도 기웃거리는 사람들도 상당수"라고 말했다. K씨에 따르면 서울의 수천 개에 달하는 계 중 '강남귀족계'로 불릴 만한 계는 30개 정도이다. 그러나 "이 중 다복회와 연계돼 있는 계들도 상당수 있어 계가 깨지는 현상이 도미노처럼 이어질 수 있다"는 것이 K씨의 경고다.

K씨를 통해 다복회 피해자를 둘러싼 무성한 소문도 일부 확인할 수 있었다. 그 자신도 윤씨에게 25억원이 물렸다고 했다. 어음으로 15억원을 빌려줬고, 곗돈 10억원을 아직 받지 못하고 있다는 것. 그가 개인적으로 알고 있는 수십억대 피해자만도 수두룩했다. 음식점 체인을 하는 L씨가 130억원, 재벌가 S여사는 100억원, 군장성 부인 C씨는 50억원, 공기업 사장 부인 J씨는 40억원 등이다. 코미디언 P씨, 가수 L씨 등 피해자 가운데는 연예인들도 적지 않다고 한다.

조씨가 보여준 불입금 납부 내역을 분석한 결과,한아름회가 적용하는 수익률(금리)은 월 2.25%였다.

1억원짜리 번호계의 경우 21명이 1개조가 돼 원금을 매달 500만원씩 20회 붓는다. 1번인 사람은 1억원을 타가지만 그 다음달부터는 원금에 이자(225만원)가 붙어 725만원씩 낸다. 2번인 사람은 첫 달에는 500만원을 내지만 곗돈을 탄 다음달부터는 725만원씩 낸다. 결국 20개월 동안 1번이 내는 돈은 1억4500만원인데 마지막 번호로 타는 사람이 받는 돈과 같은 액수다. 마지막 번호는 20개월 동안 1억원을 내고 1억4500만원을 타간다.

김병일 기자 kbi@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