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속도로에서 사고 난 차를 도우려 갓길에 정차한 차로 인해 추가 사고가 발생했더라도 구조가 시급히 필요한 상황이었다면 책임을 물을 수 없다는 법원 판결이 나왔다.

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14부(임채웅 부장판사)는 전국화물자동차운송사업연합회가 삼성화재와 한화손해보험을 상대로 제기한 구상금 청구 소송에서 원고 패소 판결했다고 11일 밝혔다.

이모 씨는 2002년 9월 중부고속도로에서 차를 몰고 가다 타이어가 펑크 나는 바람에 1차로와 2차로를 걸쳐 차가 가로로 정지하는 상황에 처했다.

뒤따르던 박모씨와 황모씨는 이씨를 도우려고 사고 지점을 30m가량 지나친 지점의 갓길에 차를 세운 뒤 이씨의 차가 멈춰선 지점으로 가고 있었다.

그 사이 뒤이어 달리던 A씨의 차가 사고 상황을 보고 비상등을 켠 뒤 이씨의 뒤쪽 주행로에 차를 세웠는데, 이를 뒤늦게 발견한 도모 씨는 미처 차를 세우지 못해 앞에 있던 A씨의 차를 추돌했다.

이 때문에 A씨의 차가 앞으로 밀리면서 이씨의 차를 들이받고 계속해서 박씨와 황씨의 차와 충돌했으며 도씨의 차는 중앙분리대를 스치고 전도됐다.

이 사고로 A씨가 하반신 마비 상태에 빠졌고 동승자 한 명이 숨졌으며 이씨와 박씨, 박씨의 차 동승자 등 3명이 크고 작은 상처를 입었다.

이에 도씨 차의 손해배상 책임을 지고 있는 연합회는 박씨 차의 보험사인 삼성화재와 황씨의 차가 가입된 한화손해보험을 상대로 합계 9억1천여 만원을 배상하라고 소송을 냈다.

연합회는 박씨와 황씨가 이씨의 사고 지점을 충분히 통과해 차를 세웠거나 가던 길을 그냥 갔다면 사고를 피할 수 있었을 것이라고 주장했지만 법원은 더 큰 사고를 막으려고 구조를 시도한 것은 합리적인 판단이고 그 결과가 나쁘다는 이유로 책임을 물을 수 없다고 판시했다.

재판부는 "박씨와 황씨가 더 먼 곳에 정차했다면 2차 사고 위험은 줄지만 그만큼 구조조치가 늦어지고 이로 인해 더 큰 사고가 발생할 위험이 있었다고 보인다"며 "이들의 판단이 잘못됐다고 보기 어렵고, 결과적으로 추가 충돌이 발생해 구조 시도가 성과를 거두지 못했더라도 이를 달리 볼 수 없다"고 밝혔다.

이어 "차가 고속도로에서 2개 차로에 걸쳐 가로로 멈춰 서면 뒤에 오는 차와 충돌할 가능성이 매우 커 이 차에 대한 구조 행위는 다른 어떤 요소보다 우선해야 한다"며 "차를 세울 때 충돌 위험을 충분히 피해야 한다는 일반적 의무도 긴박한 당시 상황에 맞게 수정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서울연합뉴스) 이세원 기자 sewonlee@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