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뿐인 '경제위기 극복 선언'


민주노총 산하 금속노조가 8일 '경제위기극복 사회선언'에서 재계와 정부에 노동자의 고용보장과 생활보장만을 요구한 채 고통분담 의지를 밝히지 않자 전문가들은 "노동계가 정말 정신을 못 차린 것 같다"고 비판했다.

금속노조는 이날 해고금지 및 총고용 보장 ,노동시간 단축을 통한 일자리 만들기,재벌기업 잉여금 10% 사회환원 등 자신들의 요구사항만을 늘어 놓았다. 어려운 경제 상황을 극복하기 위해 노동계가 어떤 역할을 하겠다는 다짐이나 약속은 찾아볼 수 없다. 정갑득 금속노조위원장은 "이미 노동자들의 실질임금은 심각하게 삭감된 상태다. 기존보다 40% 이상 줄어 기본 생활이 어려운 경우도 많다"며 임금동결 또는 삭감 의지가 전혀 없음을 분명히 했다. 그는 또 "위기 때마다 임금동결을 많이 해왔는데 한 번하곤 언론에 사진찍고 뒤통수 맞고는 했는데 이런 방식으로는 안할 것"이라며 엉뚱한 변명을 달았다.

금속노조의 사회선언 발표에 대해 전문가들은 황당해하고 있다. 김태기 단국대교수(경제학)는 "금속노조에 별 기대는 안했지만,그래도 고용보장만 요구하고 고통 분담을 다짐하지 않은 데 대해 실망을 금할 수 없다"며 "경제가 어려울 때 노조가 임금을 자제하는 것은 경영난을 겪는 기업에 숨통을 터주고 이를 통해 노동자 자신의 일자리를 지키기 위한 수단"이라고 말했다.

박영범 한성대 교수(경제학)도 "노조가 고통 분담을 외면하고 자신들의 일자리만 요구한 것은 정신나간 짓"이라며 "선진국에서 노사 간 임금 자제와 고용 유지를 서로 맞바꾸는 양보 교섭이 일반화된 것은 노사가 함께 살기위한 고육지책"이라고 지적했다.

금속노조가 고통 분담을 외면한 것은 조직 내 강온파 간 주도권 싸움으로 합리적 노동운동이 뿌리내리지 못했기 때문이란 지적도 많다.

노동부 관계자는 "일자리를 지키기위해선 노조의 임금동결 선언은 전제되어야 하는데 금속노조 내 강경파의 입김이 세다보니 임금동결에 대한 논의조차 이뤄지지 않은 것 같다"고 말했다. 노조 권력이 고통 분담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게 했다는 분석도 있다. 노조 권력이 막강하다보니 회사는 해고를 마음대로 할 수 없고 따라서 노조로선 아쉬울 게 없다는 해석이다. 금속노조는 고용 보장을 요구한데 이어 한 발 더 나아가 임금 보전을 촉구했다. 고용 보장은 당연한 것이고 경영이 어려워 임금이 깎인 사업장은 임금을 원위치로 보전하라는 것이다.

기아자동차가 최근 생산라인 중단으로 잔업수당과 주말특근수당을 지불할 수 없다고 밝힌데 대해 노조가 반발하는 것도 우리나라 노동계의 현주소를 읽을 수 있는 대목이다. 한국경총은 "금속노조 일자리 나누기 선언은 어려운 경제 상황에도 불구,고통 분담은 전혀 감수하지 않고 오히려 위기를 기회삼아 기존의 투쟁 목적을 달성하겠다는 선언에 불과하다"고 비판했다.

윤기설 노동전문/김동욱 기자 upyk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