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가 60년 회고록 '지리산의 무쇠소' 낸 고산스님

"경제가 어렵다고 하는데 우리나라 사람들은 고통을 좀 더 겪어봐야 합니다. 논밭을 다 묵혀놓고 일은 안 하면서 어렵다,어렵다 말만 합니다. 부처님은 하루 6시간만 자라고 하셨는데 저는 3시간만 자고 일해도 아무 지장 없었어요. 일근천하무난사(一勤天下無難事)라,부지런히 일하고 노력하면 천하에 어려운 일이 없고 경제위기도 충분히 극복할 수 있습니다. "

지난 6일 경남 하동 쌍계사 방장실.대한불교조계종의 스님들이 지켜야 할 계(戒)를 내리는 최고책임자인 전계대화상(傳戒大和尙)이자 쌍계사 조실인 고산 스님(76)은 서울에서 찾아간 기자들이 경제위기를 극복할 지혜를 묻자 이렇게 답했다.

어려움을 이길 방도는 자신에게 있으며 여건이나 남을 탓하기보다 스스로 노력하는 것만이 위기를 극복하는 길이라는 얘기다.

"외환위기가 한창이던 1998년이나 지금이나 상황은 똑같습니다. 모두가 화합하면서 윗사람은 본을 보이고 아래 사람은 본받으며,언행을 일치하면서 꾸준히 정진하면 무엇이든 못할 일이 없어요. 선진국 사람들은 하루 8시간만 일해도 된다지만 아직 우리는 더 열심히 일해야 됩니다. "

고산 스님의 이런 정신은 출가자로서 살아온 60여년의 삶을 정리해 최근 출간한 회고록 《지리산의 무쇠소》(조계종출판사 펴냄)에 그대로 담겨있다.

해방 직전인 1945년 3월 열세살의 나이에 부산 범어사로 출가한 고산 스님은 경전을 강의하는 강사(講師),계율 전문가인 율사(律師),참선으로 깨달음을 이룬 선사(禪師)로 손꼽힌다.

폐사 직전의 쌍계사를 중창하고 부산 혜원정사,부천 석왕사,거제 연화사 등을 창건하며 포교에 앞장섰고 범패,염불,간경,주력(주문을 외우는 수행법) 등에 이르기까지 못하는 것 없이 두루 갖췄다.

총무원장 재임 시절 총무원장 선거 과정이 위법했다는 법원 판결이 나오자 곧바로 걸망을 메고 쌍계사로 내려와 분란의 소지를 없앰으로써 종단 안팎을 놀라게 했다.

"출가한 지 얼마 되지 않아서 부산 해불암에 살 때 고추농사를 망친 적이 있어요. 주지 스님이 고추밭에 비료를 주라기에 고추 포기마다 비료를 촘촘히 뿌렸는데 다 말라죽었어요. 고추 포기에서 한뼘쯤 띄워서 비료를 줘야 했는데 뭘 모르니까 바로 옆에다 뿌렸거든요. 이때 저는 밥짓는 일이든 농사일이든 세상에서 못하는 거 없이 다 잘 해보자고 원을 세웠지요. "

특히 범어사로 화엄경을 빌리러 갔다가 승복을 벗기고 내쫓기는 산문출송(山門黜送)을 당한 경험은 고산 스님이 더욱 정진하는 계기가 됐다.

당시 범어사 교무국장이 납득할 수 없는 이유로 화엄경을 빌려주지 않고 모욕하자 참지 못한 고산 스님이 사소한 폭력을 행사했다.

이게 빌미가 돼 출가자로선 사형선고에 해당하는 산문출송을 당하자 스님은 이를 악물고 공부해 강사,율사로 인정받았다.

지난해 10월 전계대화상에 추대된 고산 스님은 "계율은 집을 지을 때 기초를 다지는 것과 같다"면서 "기초가 튼튼해야 집을 높이 세울 수 있고 흔들리지 않듯이 계행(戒行)의 그릇이 반듯해야 그 속에 담긴 물이 고요하고 담담해져서 지혜의 달이 저절로 비친다"고 강조했다.

"일생 동안 말없이 일하는 소처럼 일을 하면 못사는 사람 없이 불경기를 다 헤쳐갈 수 있을 겁니다. 또 죽어서는 고기와 가죽과 뼈까지 남김 없이 다 보시하는 소처럼 나누고 베푸는 보살정신으로 살면 우리나라가 세계의 종조국이 됩니다. 열심히 정진하세요. "

기축년 소띠해 덕담을 이렇게 건넨 고산 스님은 행복하게 사는 법도 덤으로 선사했다. 감사하는 마음,웃는 얼굴,그리고 침묵이 그 비결이다.

"입은 몸의 대문입니다. 열어 두면 도둑이 들기 쉽고 재물이 나가기 쉬우니 닫고 있으면 자연히 행복해집니다. 본대로 들은대로 여기저기서 입을 놀려 털어버리면 시비만 생기고 잘 못 삽니다. 누가 욕하거나 모욕해도 감사하고 웃는 얼굴로 대하면서 말을 아끼세요. "

쌍계사(하동)=글 · 사진 서화동 기자 firebo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