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신각 7만명 운집…"새해엔 경제회복 되길"
배드민턴 금메달 이용대 선수 등 16명 타종

힘찬 타종소리와 함께 기축년이 밝았다.

다사다난했던 무자년. 최악의 경제침체로 어느 때보다 고단했던 한 해를 보낸 시민들은 우렁찬 타종소리와 함께 새해 첫날을 맞으면서 기축년을 향한 기대와 희망의 함성을 내질렀다.

2009년 1월 1일 오전 0시 서울 종로구 보신각 일대에서는 시민 7만여명이 운집한 가운데 한해를 보내고 희망찬 새해를 맞는 '2009 제야의 종' 타종행사가 열렸다.

영하 7.5도에 차가운 바람까지 불어 체감온도가 영하 10도까지 떨어지는 혹독한 날씨였지만 보신각 주변은 새해 첫 순간을 맞이 하기 위해 몰려든 시민들로 행사 전부터 발디딜 틈이 없었다.

팔짱을 낀 연인과 부부, 부모의 손을 잡고 나온 고사리손의 어린이, 친구들과 함께 삼삼오오 모여든 청소년들은 너나 할 것없이 새해를 맞는 기쁨을 함께 만끽했다.

타종식에 앞서 30여분간 사전공연으로 분위기가 한껏 달아오른 가운데 국민의 소망을 담아 종을 힘차게 두드릴 16명의 타종인사가 보신각 계단에 올랐다.

시민들은 이들의 발걸음이 종루까지 이어지는 동안 환호성을 멈추지 않았다.

베이징올림픽 배드민턴 금메달리스트 이용대 선수와 붕어빵을 팔며 매일 500원짜리 동전을 모아 이웃을 도운 이문희씨, 지하철 선로에 떨어진 시민을 구한 이시화씨 등 시민대표 11명이 우렁찬 종소리로 기축년의 신새벽을 알렸다.

오세훈 서울시장과 김기성 서울시의회 의장, 공정택 서울시교육감, 김석기 서울경찰청장, 김충용 종로구청장도 새해 첫 새벽의 종소리를 만들어냈다.

첫 타종을 시작으로 33번의 종소리가 보신각을 넘어 종로 일대로 울려퍼지자 시민들은 일제히 디지털카메라나 휴대전화를 꺼내 사진과 동영상을 찍어대며 2009년 새해를 맞은 추억을 담았다.

한해를 보내는 아쉬움과 새해를 맞는 기대가 교차하는 순간. 밤하늘은 종소리와 환호성이 공존했다.

한민족 특유의 정서가 아니었던가.

희망찬 순간엔 역시 덕담이 오갔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건강하세요", "행복하세요"

오세훈 서울시장은 신년사를 통해 "올해는 풍요를 상징하는 소의 해"라면서 "대내외적으로 위기지만 우리는 위기에 닥칠수록 슬기롭게 극복하는 지혜를 가졌다.

마음을 모아 희망을 만들어가는 한해가 되기를 기원한다"고 새해 메시지를 던졌다.

어느 때보다 어려웠던 경제가 하루빨리 활력을 되찾기를 바라는 염원이 가득찼다.

연말까지 정쟁에 매몰된 채 국민을 외면한 정치권이 기축년에는 진정 국민의 신뢰를 받는 곳으로 거듭나기를 바라는 간절한 소망도 표출됐다.

아직 취업하지 못한 젊은이들은 원하는 일자리를 하루속히 찾기를 희망했고 사랑하는 가족과 연인의 소망이 이뤄지길 바라는 기도가 거리를 가득 메웠다.

타종을 전후해서는 보신각과 대학로에 마련된 특설무대에서 인기가수 등의 축하공연이 열려 축제 분위기를 한껏 북돋웠다.

젊은이들은 폭죽을 터뜨리며 종소리가 울려퍼질 때마다 '와∼'라는 함성과 박수로 새해 첫날을 맞는 감격을 나눴다.

가족과 함께 행사장을 찾은 이시연(55.회사원)씨는 "새해에는 경제와 사회가 모두 다 잘 풀려서 서민들이 살기 좋아졌으면 좋겠다.

젊은 대학생들이 오늘 많이 온 것 같은 데 이들의 취업문도 새해에는 활짝 열렸으면 한다"고 염원했다.

박혜원(20.여.대학생)씨는 "타종행사를 한번도 보지 못해 남자친구와 처음으로 행사장을 찾았다.

내년에는 학교 강의에서 좋은 성적을 받고 남자친구와도 오랫동안 함께 했으면 좋겠다"고 소원을 빌었다.

새해를 맞는 감동은 국적도 비껴갔다.

남자친구 라이언 오코넬(23.대학생)과 함께 온 애슐리 제스카(24.여.영어학원강사)는 "오코넬이 새해를 함께 맞기 위해 미국 본토에서 건너 왔다.

둘이서 더 많은 새해를 맞게 되는 게 꿈"이라며 마냥 즐거운 표정이었다.

같은 시각 남산 팔각정 광장에서는 시민 100여명이 조용한 가운데 새해 첫 순간을 맞았다.

서울 곳곳의 교회와 성당에서는 '송구영신(送舊迎新)'을 기념하는 대규모 예배와 미사가 열렸고 관악구 봉천2동의 한 교회에서는 고시생 수백여명이 주민들과 함께 예배를 올리며 내년 합격을 기원했다.

예배에 참여한 사법고시생 주희연(26.여)씨는 "내년 2월 1차시험이 있는데 합격자 명단에 내 이름이 있었으면 좋겠다"면서 "뒷바라지하는 부모와 언니에게 합격소식을 당당히 전하겠다"고 다짐했다.

이날 보신각 타종행사장 주변에서는 시민단체와 언론단체, 시민 등 4천여명(경찰 추산)이 촛불을 들고 정부를 규탄하는 집회를 벌였으나 경찰과 약간의 몸싸움만 있었을 뿐 특별한 충돌은 없었다.

경찰은 세종로∼종로 1가, 종로2가∼보신각, 을지로1가∼종로1가 구간의 차량통행을 전면 통제하는 한편 전경 142개 중대, 1만4천여명을 배치해 만일의 사태에 대비했다.

지하철은 전 노선이 종착역을 기준으로 1일 오전 2시까지 운행이 연장됐으며 행사장을 지나는 57개 노선 1천480대 노선버스가 임시로 주변 도로로 우회했다.

(서울연합뉴스) 양정우 기자 eddie@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