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소야. 올해는 기축년,12년마다 돌아오는 소의 해라는구나.

우리 민족은 참으로 오랜 옛날부터 너와 함께 살았지.이미 신석기ㆍ구석기 유적에서 네 조상들의 뼈가 출토됐으니 말이야.안악 3호분,덕흥리 고분,무용총,쌍영총,각저총,오회분 4ㆍ5호묘 등 고구려 고분에도 네가 등장하지.너의 조상들은 고대사회에서 순장용,제의용으로 주로 쓰였지만 삼한시대를 거치며 사람들의 일상생활에 많은 도움을 주기 시작했지.

신라에선 눌지왕 22년(438년)에 우차(牛車) 끄는 법을 가르쳤고,지증왕 3년(502년)에 소를 이용해 밭을 가는 우경(牛耕)이 시작됐다는 기록이 ≪삼국사기≫의 <신라본기>에 나오더구나. 그만큼 농경사회에서 너는 단순히 가축의 의미를 넘어 한 식구였어.농사를 짓는 데 가장 큰 노동력을 제공해준 큰 일꾼이었을 뿐만 아니라 수확한 곡식이나 물건을 나를 때에도 네가 꼭 필요했지.그뿐이니? 집에 급한 일이 생기면 어른들은 너를 팔아서 목돈을 마련했어.

사람들과 오랫동안 친근하게 지내온 탓에 우리 민속에도 너는 자주 등장하지.풍요와 힘을 상징하는 너를 통해 풍년 농사를 기원하는 일이 많았어.정월 '소날'에는 특별히 너를 잘 먹였고 대보름 전날 밤에는 하루 세 끼 외에 오곡밥을 쇠죽에 섞어 먹이면서 쌀을 먼저 먹으면 쌀 풍년,콩을 먼저 먹으면 콩 풍년을 점치곤 했지.

농경사회에선 가장 큰 농사일꾼이었던 너를 이웃간에 빌려쓰는 일이 많았어.주인에게 대가를 지불하고 너를 빌려 쓰는 '도지소',채 어른이 되기 전의 소를 8,9월께 데려다 겨우내 먹여 키운 다음 이듬해 봄이나 가을까지 일을 시킨 후 돌려주는 '무도지소',남의 소를 빌려다 기른 후 다 자라거나 새끼를 낸 뒤에 수익금을 임자와 나누는 '소배내기' 등 다양한 풍속이 있었거든. 이렇게 너와 사람들은 친하게 지냈고 너는 참으로 많은 희생을 하며 우리 삶을 도왔지.살아서는 농사일에 가장 큰 힘을 보태고,죽어서는 육류 섭취가 적었던 농경사회에서 고기를 제공했으며,가죽마저도 사람들의 옷과 신발로 내놓았잖니.

그래서 사람들은 너의 순박함과 근면함,우직함과 충직함을 늘 칭송하고 기렸어.'소처럼 일한다''소같이 벌어서 쥐같이 써라''드문드문 걸어도 황소걸음''소에게 한 말은 안 나도 아내에게 한 말은 난다''호시우행'(虎視牛行ㆍ호랑이처럼 예리하게 판단하고 소처럼 신중하고 끈기 있게 행동한다)….너에 관한 속담이나 비유를 보면 대부분 긍정적이잖아.'소는 말(言)이 없어도 열두 가지 덕이 있다'는 말도 있을 정도니까 '쇠귀에 경 읽기' 정도의 부정적인 말은 넓은 마음으로 양해해주면 좋겠어.

또 너의 성품은 은근과 끈기,여유로움을 특징으로 하는 우리 민족의 기질과도 잘 어울렸지.옛날 그림을 보면 너를 타고 유유자적하는 모습이 많이 나오더구나. 특히 속세를 떠나 은일자적(隱逸自適)할 수 있는 선계(仙界)를 동경했던 선비들은 기우행(騎牛行)을 즐기고 그런 분위기를 시나 그림으로 표현하길 좋아했어.조선의 정승 가운데 황희,김시습,맹사성 등은 너와 관련된 일화도 많이 남겼단다. 맹사성은 소를 타고 고향인 온양을 오르내렸고,황희는 젊은 시절 "어떤 소가 일을 더 잘하느냐"는 질문에 주인이 귓속말로 대답하는 까닭을 물었다가 무안을 당했지.일을 못하는 소가 들으면 얼마나 섭섭하겠느냐는 얘기였어.

십이지의 두 번째 동물인 너는 시간으로는 오전 1~3시,방향으로는 북북동을 지키는 시간신이자 방위신이라고 한단다. 60갑자에서 소띠 해는 을축(乙丑ㆍ청) 정축(丁丑ㆍ적) 기축(己丑ㆍ황) 신축(辛丑ㆍ백) 계축(癸丑ㆍ흑)의 5번이 있는데 기축년 소띠해의 색깔은 황색(금색ㆍ누런색)이라고 해.

게다가 꿈에 등장하는 너는 조상ㆍ산소ㆍ자식ㆍ재물ㆍ협조자ㆍ부동산을 상징한다지.'꿈에 황소가 집으로 들어오면 부자가 된다'거나 '소의 형국에 묏자리를 쓰면 자손이 부자가 된다'는 속설은 네가 풍요와 부의 상징임을 보여주거든.주식시장에서도 강세장을 '불 마켓(Bull Market)'이라고 하잖니. 올해 경제가 참으로 어려울 거라고 하는데 황금소의 힘찬 기운과 천천히 가지만 성실하고 끈질긴 너의 품성으로 위기를 극복하고 모두가 행복해졌으면 좋겠어.

우리들의 친구, 소 파이팅!

서화동 기자 firebo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