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세청 요구로 박 회장 측이 작성
태광실업측 "불법 로비, 금품 살포와는 무관"

노무현 전 대통령의 형 건평씨가 구속되고서 검찰 수사의 무게중심이 노 전 대통령의 후원자인 박연차 태광실업 회장으로 쏠리는 가운데 박 회장이 정치인들에게 돈을 뿌린 `리스트'가 존재하는지를 두고 설왕설래하고 있다.

서울 여의도 정가에는 박 회장이 여ㆍ야를 가리지 않고 정치인들에게 금품이나 로비자금을 전달했고, 이들의 실명이 기재된 리스트를 검찰이 살펴본다는 소문이 퍼진 것으로 전해졌다.

7일 검찰과 국세청, 그리고 박 회장 측에 따르면 국세청이 태광실업을 세무조사하는 과정에서 `박연차 리스트'라고 부를 수 있을만한 자료를 확보해 검찰에 넘긴 것은 사실인 것으로 확인됐다.

국세청이 세무조사를 하면서 참여정부 시절인 2003∼2004년께부터 작년까지 박 회장이 매일 구체적으로 누구를 어떤 명목으로 만나 회삿돈으로 얼마를 썼는지 등을 정리해 제출할 것을 박 회장과 태광실업에 요구했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태광실업 측은 박 회장의 개인수첩에 적힌 메모와 비서실의 스케줄,법인카드 영수증 등 회삿돈 지출명세를 근거로 리스트를 만들어 제출했고, 이 리스트가 국세청이 검찰에 박 회장을 고발하면서 넘긴 세무조사 자료에 포함된 것으로 전해졌다.

박 회장이 정치권 인사들과 폭넓은 친분을 쌓아온 만큼 이 리스트에는 수십명의 정치인과 지역인사, 언론인 등 박 회장이 만난 인사들의 실명이 적혀 있으며 이들과 만나면서 식사비나 골프 비용, 술값으로 얼마를 썼는지가 정리돼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실제 `박연차 리스트'는 태광실업이 국세청의 요구에 따라 자체 작성한 것으로, 불법 로비나 금품 살포와는 무관하다는 게 태광실업 등의 설명이다.

다만 박 회장과 만난 횟수와 지출금액 등을 근거로 박 회장이 어떠한 정치인과 친분이 두터웠는지 등을 알 수 있어 로비 수사의 단서는 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앞서 박 회장은 2002년 12월과 2003년 3월 당시 노무현 대통령 후보의 정무팀장이었던 안희정씨에게 7억원의 불법 정치자금을 제공했다 벌금 3천만원을 선고받고, 2006년 5월에는 지방선거를 앞두고 열린우리당 의원 20여명에게 회사 직원과 가족 명의로 300만∼500만원씩 후원했다 정치자금법 위반 혐의로 약식 기소된 바 있다.

또 2002년 대선 직전까지 한나라당 재정위원을 지내면서 특별당비 10억원 가량을 내기도 하는 등 여야 정치인을 상당수 후원한 것으로 전해졌다.

따라서 태광실업 측이 국세청에 넘긴 리스트와 별도로 박 회장이 `뒷돈'을 대줬다는 의혹이 있는 L, P, S씨 등 정치권 인사 10여명의 이름이 적힌 리스트가 돌고 있다는 소문도 나오고 있다.

한편 오는 23일까지 박 회장 사건 수사를 마무리하기로 한 검찰은 `세종증권 내부정보 이용 주식거래', `휴켐스 헐값 인수 및 주식매매', `홍콩법인 조세포탈' 등 3대 의혹을 규명하는데 수사력을 집중하고 로비 의혹은 수사 대상이 아니라고 강조하고 있어 로비 의혹이 규명될 수 있을지는 미지수이다.

최재경 대검 수사기획관은 "박 회장 사건은 본질상 국세청의 탈세 혐의 고발에 대한 수사이고 정관계 로비 수사가 아니다.

현재까지 비자금으로 의심될 만한 자금이 발견된 적도 없고 어떤 로비 혐의도 포착된 바 없다"고 거듭해서 선을 그었다.

하지만 박 회장의 개인 돈과 회삿돈을 추적하는 과정에서 뭉칫돈이 정계로 넘어간 단서가 포착된다면 검찰도 확인할 수밖에 없어 수사가 어느 방향으로 흘러갈 지는 아직 가늠하기 어렵다는 게 검찰 안팎의 전망이다.

(서울연합뉴스) 성혜미 기자 noanoa@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