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사에 따라 형량이 들쑥날쑥했던 이른바 '고무줄 양형' 시비가 사라질까. 법조계 전문가와 민간위원들로 구성된 제1기 양형위원회가 24일 성범죄,살인죄,뇌물죄에 관한 양형 기준안을 마련해 발표했다. 양형위는 이날 3개 범죄의 양형 기준안에 대한 1차 공청회를 개최했으며 조만간 강도죄,횡령죄,배임죄,위증죄,무고죄 등 5개 범죄의 양형 기준안도 마련해 2차 공청회를 연 뒤 내년 4월 최종 양형 기준을 확정한다.

◆성범죄 기준은 피해자 '연령'

양형위는 성범죄를 13세 이상을 대상으로 한 강간과 13세 이상 상대 강제 추행,13세 미만 상대 성범죄 등으로 구분해 다른 양형 기준안을 제시했다. 특히 강간살인범에 대해서는 무기 징역까지 선택할 수 있도록 했다. 성폭행 유형으로는 일반 강간과 주거 침입,특수 강간,강도 강간으로 분류했고 양형 인자를 감경 요소와 가중 요소로 구분해 형량을 조절하도록 했다. 가중 요소는 성적 수치심 증대,취약한 피해자를 상대로 한 범행,계획적 범행 등이고 감경 요소는 자수,피해자와 합의한 경우,소극 가담 등이다.

◆뇌물죄 기준은 뇌물 '액수'

뇌물 수수의 경우 3000만원 미만,3000만~5000만원,5000만~1억원,1억~5억원,5억원 이상 등 5가지로 유형을 나눴다.

약속에 그치거나 소극 가담한 경우,초범이거나 자백한 경우엔 형량을 감경하도록 했고 적극적으로 요구하거나 3년 이상 장기간 뇌물을 수수한 경우,누범이거나 고위 공무원인 경우에는 형량을 가중하도록 했다.

뇌물공여 유형은 3000만원 미만,3000만~5000만원,5000만~1억원,1억원 이상 등 4가지로 나눴다. 감경 요소로 약속이나 의사 표시에 그친 경우,수뢰자의 요구에 수동적으로 응한 경우를 꼽았고 적극적 뇌물 증여나 동종 누범,높은 업무 관련성 등을 가중 요소로 정했다. 양형위는 집행유예 기준을 따로 제시했는데 △신분 상실이나 사회적 명예 실추 △부정한 이익의 몰수 △관련 징계처분 등은 고려하지 말아야 한다고 덧붙였다.

◆살인죄 기준은 '동기'

양형위는 살인의 유형을 범행 동기에 참작할 만한 사유가 있는 경우,보통 살인,비난할 만한 사유가 있는 경우 등 3가지로 구분했다. 참작할 만한 사유는 장기간의 가정 폭력,성폭행 등 지속적으로 피해를 당하다 살인을 저지른 경우이며 비난 사유는 '묻지마 살인'이나 청부 살인 등 범행 동기가 좋지 않은 경우다.

그러나 이번 양형 기준이 '고무줄 양형' 논란을 잠재우기엔 한계가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범행 동기가 주관적이고 추상적인 개념인 데다 범죄자의 진술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이를 은폐하거나 왜곡할 경우 판단 근거가 부족하다는 것이다.

또 뇌물수수죄의 경우 제1유형을 3000만원 이하로 설정해 실효성이 떨어진다는 주장도 있다. 대부분 뇌물수수액이 3000만원 이하인 점을 고려할 때 액수를 더 세분화해 형량의 예측 가능성을 높여야 한다는 것이다.

김정은 기자 likesmil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