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은 남자의 계절'이라는데 올 가을 극장가는 여자 배우들의 경연장이다. '미쓰 홍당무'의 공효진,'아내가 결혼했다'의 손예진,'그 남자의 책 198쪽'의 유진,'미인도'의 김민선 등이 그 주인공들.이들 영화는 독특한 여성 주인공의 캐릭터를 부각하거나 감성적인 멜로 분위기를 물씬 풍겨 여성 관객들의 호기심을 자극하고 있다.

그렇다면 남심(男心)의 관점에서 볼 때 가장 궁금한 영화는 무엇일까? 아무래도 손예진의 '아내가 결혼했다'가 아닐까 싶다. 우선 아내가 다른 사람과도 결혼하고 싶다고 말하는 설정 자체가 독특한 상상을 하게 만든다. 또한 모든 면에서 완벽하다고 할 수 있는,너무도 사랑스러운 그녀로 출연하는 손예진의 톡톡 튀는 연기가 눈에 띈다. '아내가 결혼했다'의 손예진은 이전 어느 영화보다 남심을 흔들어 놓는다. 귀여운 표정의 애교와 완벽한 요리 솜씨로 무장한 손예진을 어찌 외면할 수 있겠는가. 매일 나만 사랑해도 모자란 그녀가 다른 남자도 사랑한다는 것이 문제이긴 하지만. 2000년대 초반 전도연을 잇는 '멜로의 여왕'이라는 말을 들었던 손예진은 영화 '작업의 정석',드라마 '연애시대'를 기점으로 자신만의 영역을 확장시키고 있다.

근래에 손예진이 출연한 '무방비도시' '스포트라이트' '아내가 결혼했다' 등을 보면 진짜 영리한 배우라는 생각이 든다. 최근 그가 출연한 작품들은 다양한 장르를 소화해낼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면서 과거의 청순가련,혹은 순수한 이미지를 많이 탈피했다. 전형적인 멜로 연기에서 벗어나 여러 캐릭터를 소화해내면서 손예진만의 연기를 보여줬고,청순가련 이미지에 씩씩발랄 이미지가 더해지면서 손예진에 대해 안티적 성향을 보이던 몇몇 여성 관객들의 시각도 부드러워졌다.

한번은 손예진에게 어떤 이미지로 자신을 봤으면 좋겠느냐고 물어본 적이 있다. 그러자 "연기는 저의 다양한 면들 중 하나를 끄집어내는 것이니까 나의 진짜 모습일 수도 아닐 수도 있는 거죠.저의 일상이나 개인적인 면을 많이 보여준다고 해도 그것 또한 사람들의 시선일 뿐이죠.진짜 나의 모습은 아닐 수 있잖아요. 배우로서 영화나 드라마에서 보여지는 손예진이 제일 좋은 것 같아요"라고 말했다. 이 말은 다른 수사보다 그냥 '배우 손예진'으로 보이길 바란다는 말일 것이다.

그렇다면 그와 함께 작업한 감독들이 갖는 손예진의 이미지는 무엇일까? 감독들은 그에 대해 '여우 같다'는 말을 자주 한다. 장면마다 감독의 마음에 딱 드는 연기를 보여주기 때문이다. 촬영 전에 캐릭터와 장면에 대한 분석을 잘 하고 상황 파악이 빠르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그와 '외출'을 함께 했던 허진호 감독은 손예진에 대해 "배우의 시각뿐만 아니라 감독이나 촬영감독,조명감독 등의 시각을 갖고 연기한다"고 말한다.

손예진은 점점 영리해지는 '여우(女優)'다. 자신의 꼬리가 몇 개인지,그리고 앞으로 몇 개의 꼬리가 더 생길지 모르는 '여우'다. 그리고 이 여우의 변신술에 홀리는 것이 기분 좋은 건 다만 필자뿐만이 아닐 것이다.

/이원 영화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