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병기 지오인터랙티브 대표(45)는 '마당발'로 따지면 대한민국 대표 선수로 꼽힌다. "연락하고 지내는 사람이 1만명 정도"란다. 지인들의 연락처가 빼곡이 적힌 수첩을 보여주며 김 대표는 "휴대폰 주소록에 저장하다 포기한 지 오래됐다"고 웃어 보였다. 사람들을 깊이 사귈 수 있는 계기가 된 것으로 그는 산과 와인 두 가지를 꼽았다.

"예전엔 설악산에 놀러가도 콘도 안에만 있었어요. 그러던 차에 2005년 1월 KBS에서 최고경영자(CEO)와 장애우가 함께 히말라야를 등반하는 프로그램을 찍자는 제안이 들어왔어요. 박진환 네오위즈재팬 대표 등 친한 CEO들이 권유하는 바람에 팔자에도 없던 고산 등정을 하게 됐죠."

눈 덮인 히말라야 고봉을 오르며 그는 "인생과 사람을 다시 생각하게 됐다"고 말했다. "올해 5월엔 일본 나고야에 있는 시로우마 다케라는 산에 갔는데 눈이 녹지 않아서 정말 죽을 뻔했어요. 그때마다 주변 사람들과의 호흡,배려가 중요하더라고요. " 지금껏 그가 오르내린 고산은 히말라야 푼힐(3210m 등정),탄자니아의 킬리만자로(5895m 중 5300m 등반),멕시코 키나발루(4095m 등정),일본 시로우마 다케(2932m 등정) 등이다.

고산을 오르내리면서 잊지 못할 인연도 여럿 맺었다. 킬리만자로를 오르면서 산악인 엄홍길씨를 비롯 박범신 작가,한철호 에델바이스 아웃도어 사장,전하진 한글과컴퓨터 사장,신종호 메리츠증권 상무,이승수 법무법인 태평양 변호사,권지예 작가 등과 친해져 '운우회'라는 산악 동호회도 만들었다. "엄 대장은 정말 존경스러운 분이에요. 정상을 200m 앞두고도 위험하다 싶으면 내려올 줄 알더라고요. "

산과 함께 그의 곁을 떠나지 않는 또 한 가지는 와인이다. "2000년 미국 실리콘 밸리에 지오소프트라는 미국 법인을 설립했을 때의 일입니다. 당시 아영FBC라는 와인 수입사를 운영하는 우종익 사장을 만났어요. 우 사장 권유로 켄달잭슨 와인스쿨에 다니면서 와인의 세계에 푹 빠지게 됐습니다. " 일주일에 두세 번 정도 지인들과 와인을 마신다는 김 대표는 "오래도록 입 안에 여운이 감도는 와인을 좋아한다"고 말했다. 좋은 와인일수록 깊은 향이 오래 남는 법인데 친구도 무릇 그래야 한다는 게 그의 지론이다.

초보자들에게 추천할 만한 와인을 물어봤다. 켄달잭슨 빈트너스 리저브 샤도네이,카스텔로 디 베라짜노 키안티 클라시코,루이 라투르 코르동 샤를마뉴…한참 낯설은 와인 이름들을 열거하더니 그는 "역시 세상에서 제일 좋은 와인은 좋은 사람들과 즐겁게 마시는 와인"이라고 너스레를 떨었다.

김 대표는 서강대 재학 시절 컴퓨터공학과 함께 경영학을 부전공했지만 동호회를 하면서 연극에도 푹 빠졌다. 이때 알게 된 지인들이 프로듀서,영화배우로 한창 활약 중이다. 덕분에 그는 TV 광고와 영화에도 출연해 꽤나 유명세를 탔다. "탤런트 박진희씨가 주연을 맡은 '산책'이란 영화에서 수목원 관리사로 출연한 적이 있습니다. 단역이긴 했지만 제법 비중 있는 역할이었지요. (웃음)"

미혼인 그가 마트에서 아내와 장을 보는 남편 역할로 삼성생명의 '브라보 유어 라이프' 시리즈 TV 광고에 출연한 것도 친구들과의 오랜 인연 덕분이다. "대학교 1학년 2학기 때부터 부모님 몰래 연극을 했어요. 집이 무척 엄했거든요. 외국 신부들이 40여년 전에 지어놓은 교내 극장 메리홀에서 여러 작품에 출연했지요. 그때 희로애락을 같이했던 동문들이 프로듀서,영화배우로 진출해 종종 섭외가 들어옵니다. " 삼성생명 광고는 당시 TV 광고 톱10에도 들 정도로 인기였다.

혹시 외부 일에 신경 쓰느라 본업인 게임 개발엔 소홀한 게 아닐까 싶어 조심스럽게 앞으로의 비전을 물었다. "2000년 미국 법인 설립을 시작으로 일본,중국,유럽에도 거점을 마련해 놨습니다. 얼마 전 막을 내린 베이징 올림픽을 타깃으로 만든 모바일 스포츠게임 '2008 베이징 올림픽'은 국내 게임으로는 처음 국제올림픽위원회(IOC) 공식 게임으로 선정돼 30만건이 넘는 다운로드 기록을 세웠고요. " 올해 지오인터랙티브의 예상 매출은 110억원 정도다. 김 대표는 "내년엔 두 배로 만들 자신이 있다"고 말했다.

김 대표의 꿈은 단기적으론 결혼이다. "와인 투어를 갈래도 부부 동반 프로그램이 많아 못 가는 게 억울해서"란다. 장기적으로 게임사업을 잘 키워서 예술종합대학원을 세우는 게 소원이다. 해외 시장에 내놓아도 경쟁력 있는 엔터테인먼트 후학을 양성하고 싶다는 것.

그런 꿈을 알았는지 모교인 서강대에서 지난 10일 그를 성공한 벤처기업인으로 선정해 산학협력 연구소인 미래기술원(SIAT)의 겸임교수로 위촉했다. "상명대 문화예술대학원 석.박사 과정에서 게임 관련한 강의도 하고 있어요. 부끄럽지만 후학을 양성한다고 생각하니 가슴이 벅차네요. "

민지혜 기자 spop@hankyung.com

강은구 기자 egka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