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세까지 유럽은 궁핍한 대륙이었다. 빵 한 조각 때문에 사람을 죽이는 일이 다반사였고 식량을 늘리기 위해 토지를 뺏는 전쟁이 끊이지 않았다. 여기저기 흑사병이 창궐하던 도시에 중국이나 페르시아처럼 발달된 문명이 있을 리도 없었다. 가난으로 신음하던 암흑의 땅에 '빛'이 들기 시작한 건 봉건적 경제 체제를 막 접은 15~16세기 르네상스 시대였다.

선진화의 주역은 기존의 '장사'를 '비즈니스'로 업그레이드해 엄청난 부를 축적한 상인들.과학적인 농사법을 개발했으며 무역선을 만들었고 신대륙에 진출해 커피와 사탕수수를 들여왔다. 덕분에 빈민층은 일자리를 얻어 중산층으로 부상했고 예술가들은 생계를 걱정하지 않아도 됐다. 유럽을 빈곤으로부터 구제한 그들의 철학과 비전은 오늘날 자본주의 사회의 근간이 되었으며 현대 기업의 경영 모델로 전해지고 있다.

≪비즈니스의 탄생≫은 이른바 '슈퍼 부자'들의 흥망성쇠 과정을 흥미진진하게 그렸다. 최강의 금융 권력자로서 문화 마케팅을 발전시킨 이탈리아 메디치 가문,현대 로지스틱스의 시초 자크 쾨르,복식 부기를 시작한 해상왕국 베네치아,특허 제도를 만들고 아웃소싱 제도를 정착시킨 포르투갈의 해상왕 엔히크의 탁월한 사업 방식을 소개했다.

'환전으로 돈을 벌기 시작한 메디치 가문은 역사상 최고의 부자다. 그들은 지금의 빌 게이츠보다 많은 자산을 보유하고 있었다. 교황청은 물론 각국의 왕들도 머리를 숙이고 돈을 빌려갔다. 왕과 귀족들이 농민과 노동자들을 착취하던 사회 시스템을 붕괴시키고 누구든지 능력만 있으면 부자가 될 수 있는 시대를 열었다. 인류 최초로 장사꾼에서 벗어나 사업가가 된 조반니 메디치는 문화 투자로 민심을 사로잡아 부를 지켜냈다. 레오나르도 다빈치,미켈란젤로,보티첼리가 지원을 받았다. '

센세이셔널 마케팅을 이용해 미디어 사업을 발전시킨 라이몬디,채권 방식을 고안한 현대 금융업의 아버지 야콥 푸거,프런티어 정신을 유감없이 발휘한 스페인의 코르테스,최초로 주식을 발행한 네덜란드 동인도회사가 부를 일궈낸 과정도 흥미롭다. 고객 욕구의 파악,'달걀을 한 바구니에 담지 않은' 사업 다각화는 지금도 유효한 성공 전략이다.

르네상스 당시의 유럽 거리를 걷는 것 같은 생생한 묘사,역사 속으로 들어간 듯한 풍부한 배경 설명이 돋보인다. 내용과 어울리는 100여 컷의 컬러 그림과 사진도 읽는 이의 눈을 즐겁게 한다.

김홍조 편집위원 kiruki@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