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경 사건은 재판부가 현장을 보지 않으면 판결을 내릴 수 없습니다. "

일반 합의재판부는 많아야 1년에 열 번 가는 현장 검증을 5개월 만에 40여 차례나 다녀온 부장판사가 있어 화제다. 서울중앙지법 환경 전담 재판부인 민사14부의 임채웅 부장판사(44.연수원 17기)가 그 주인공.첨예하게 이해 관계가 대립하는 환경 사건에서 보다 정확한 판결을 내리기 위해서는 판사가 직접 현장을 둘러보고 소음이나 일조권 침해의 정도가 어느 정도인지를 피부로 느껴 봐야 한다는 게 그의 지론이다. 임 판사는 방문할 곳이 많으면 당일치기가 아닌 장기간의 현장검증 출장도 마다하지 않는다. 지난달에는 원주의 공항 소음,단양 시멘트 공장 사건,포항의 송유관 기름유출 사건,순천 고흥의 간척지 사건,고흥 연도교 양식장 피해 사건 등 5건의 현장 검증을 위해 2박3일간 강행군하기도 했다. 임 판사는 "서류 검토만으로 환경 사건을 결론 내리면 현실과 큰 괴리가 생길 것"이라며 "전임 재판부가 이미 현장 검증을 한 사건이라도 다시 가서 직접 현장을 보는 것을 원칙으로 하고 있다"고 말했다.

발로 뛴 노력의 결과는 그대로 나타났다. 임 판사는 환경 사건의 새로운 기준을 제시하는 판결을 속속 내놓고 있다. 최근 재건축에 따른 일조권 분쟁이 빈번하게 발생하는 가운데 일조권 판단의 6가지 기준을 제시한 '대치 아이파크' 사건이 그 대표적인 예다. 사건마다 다양한 변수로 인해 일정한 잣대를 대기 어려운 일조권 분쟁 사건에 기념비적인 판단 기준을 세웠다는 것이 법조계 안팎의 평가다.

임 판사는 공항 소음 관련 수원비행장 사건에서 80웨클(WECPNL.국제 항공기 소음도 측정 단위)을 손해배상 한도로 규정한 판결을 내리기도 했다. 앞으로 도로 소음과 관련해서도 기준을 제시하는 판결을 준비 중에 있다.

전남 구례 출신으로 서울대 법대를 나온 임 판사는 법원 내 소문 난 'Armchair Traveler(실제 여행하는 대신 여행기 등을 읽고 즐기는 간접 여행자)'다. 실제 그의 방 책꽂이에는 30여권의 유명 가이드 북인 '론리 플래닛'이 꽂혀 있다. 여행을 좋아하기는 하지만 재판 일정이 바빠 여행기로 대신한다고 한다.

박민제 기자 pmj53@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