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 법 원칙따른 엄정처리 한다더니…

촛불 집회가 서울 도심의 불법 도로 점거로 걷잡을 수 없이 번지고 있는 것은 경찰의 일관성 없는 대처가 한몫 했다는 지적이다.

김경한 법무부 장관과 어청수 경찰청장은 연일 '법과 원칙에 따른 엄정 대처'를 부르짖고 있지만 경찰의 현장시위 대처 방식은 지시와 동떨어져 있다.

27일 새벽 서울 청계광장에 모인 시위대가 을지로 입구를 지나 명동 쪽으로 행진할 무렵 경찰은 오히려 교통을 통제하며 시위대의 길을 열어주는 모습을 보였다.

이 때문에 주변 대중 교통이 완전히 마비됐을 뿐 아니라 대형 버스가 줄줄이 유턴하는 등 아찔한 상황이 잇따라 연출됐다.

당시 현장의 경찰 관계자는 "행진 자체를 통제하려 들면 더 큰 물리적 충돌이 발생할 수 있고 교통사고를 막기 위해 어쩔 수 없었다"고 설명했다.

경찰 지도부는 또 가두시위 행렬과의 대치 상황에서 전경들에게 "물리적 충돌이 있어선 안 된다.

차분하고 평화적으로 대응하라"고 주문하고 있다.

'시위대에 맞을지언정 공세적 행위는 취하지 말라'는 의미로 시위 현장에서 격렬하게 몸싸움을 벌여야 하는 일선 경찰들을 갈팡질팡하게 하는 대목이다.

이번 시위에는 폴리스 라인(관할 경찰서장 등이 시위 장소나 행진 구간을 일정하게 구획해 설정한 띠)이 온데간데 없이 사라진 것도 문제다.

집회ㆍ시위에는 폴리스 라인을 설정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경찰은 폴리스라인 준수를 입버릇처럼 강조해 왔지만 촛불문화제라는 미명에 함몰된 무기력한 모습이다.

1차 연행자 36명을 풀어준 것도 경찰의 단속 의지를 의심케 하는 장면이다.

어 경찰청장은 "수백 명이라도 사법 처리하겠다"고 목소리를 높였지만 '엄포'에 그칠 것이라는 예단을 낳기에 충분했다.

경찰 측은 "입건된 36명은 주도자로 보기 어렵고 별다른 혐의점이 보이지 않는다고 판단해 전원 석방했다"고 해명했지만 스스로 식언하는 꼴이다.

경찰은 또 "일선 경찰서에서 조사받는 연행자가 계속 늘고 있는 것은 알고 있지만 아직까지는 집회 대응 방식을 바꿀 계획이 없다"고 밝히고 있다.

이에 따라 27일 이후의 불법 촛불시위 역시 어떤 양상으로 진행될지 우려가 커지는 상황이다.

이해성 기자 ih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