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촌스러운 이름 덕분에 여기까지 오게 됐죠.영어 이름이었다면 수많은 명품 브랜드들에 묻혀 생존이 불가능했을 겁니다."

키톤,코르넬리아니 등 내로라하는 명품 브랜드가 즐비한 갤러리아백화점 명품관의 유일한 토종 남성정장 브랜드인 '장미라사' 이영원 대표(51)는 "갤러리아서 랑방,크리스찬 디올 등 10여개 브랜드가 간판을 내렸지만 장미라사는 올해로 입점 11년을 맞은 터줏대감"이라며 이같이 말했다.

현재 삼성생명 본관과 갤러리아 두 곳에 맞춤매장을 운영하는 장미라사는 지난해 한 벌에 200만원을 웃도는 정장을 2000벌 넘게 팔았다.

명품브랜드로 입지를 확고히 한 덕분이란 게 이 대표의 분석이다.

정치인,대기업 총수,의대 교수 등 이름만 대면 알 만한 단골고객이 2500여명에 달한다고.특별히 고객 관리를 하지 않지만 아들을 데려와 정장을 맞추는 단골의 '대물림'도 증가세란다.

이 대표는 "지난해 말부터 20~30대 젊은 마니아들도 장미라사의 문을 두드리고 있다"고 말했다.

의류업종 전반이 불황을 겪는 것과 달리 장미라사는 올 1분기 매출이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30%가량 늘었다고 이 대표는 전했다.

앙드레 김도 철수한 갤러리아에서 장미라사가 장수한 이유는 뭘까.

이 대표는 "역설적이지만 제가 부족하기 때문에 사업을 오래 할 수 있었던 것 같다"고 답했다.

하루하루가 위기라는 생각이 '롱런(long-run)'의 모티브를 제공했다는 설명이다.

이 대표는 "1980~90년대 나타난 '기성복 쓰나미'에 휩쓸리지 않으려면 옷이 아닌 작품을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했다"며 19세기 사진기가 등장했을 때 화가들의 변신을 예로 들었다.

"1995년부터 40여명의 직원들을 로로피아나 마르조토 등 이탈리아 최고의 정장을 만드는 곳으로 보내 공부시켰습니다. 한 해 출장비만 1억5000만여원을 지출했죠."

이 대표는 '옷을 만드는 사람이 일류가 안 되면 일류 옷을 만들 수 없다'는 확고한 신념을 갖고 있다.

1956년 제일모직의 원단시험부서로 출발한 장미라사는 70~80년대 최고의 전성기를 구가하다 88년 별도법인으로 독립했다.

1977년 삼성그룹의 고졸 공채 사원으로 입사한 이 대표는 장미라사팀에 처음 발령받으면서 패션과 인연을 맺었으며,1998년 최대주주가 되면서 대표이사에 올랐다.

이 대표는 장미라사를 글로벌 브랜드로 키울 청사진을 마련해둔 상태다.

부산 등 지방 대도시와 중국 상하이에 진출하는 등 5년 내 5개 매장을 추가로 낼 계획이다.

하지만 장미라사란 브랜드는 그대로 쓸 생각이다.

"1988년에 월드 베스트 전략을 선언하고 영어식 이름으로 바꿨다가 단골들이 반발해 1년 만에 원상복귀했어요.

지금도 그분들의 생각이 옳았다고 믿고 있습니다.

'라사(羅絲)'는 이탈리아 등 유럽산 섬유원단을 일컫는 말인데 이 어감을 좋아하는 분들이 많아요."

최진석 기자 iskr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