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무법인 정평의 임재철 변호사는 지난 연말과 연초가 어떻게 지나가는지 모를 정도로 바빴다.

지난해 12월에 카자흐스탄의 알마티에 현지법인 사무소를 열었기 때문.2006년 1월 베트남에 국내 로펌의 해외 현지법인으로는 최대 규모인 변호사 8명으로 사무실을 꾸린 데 이어 두 번째 해외 진출이다.

알마티 현지법인에는 러시아 및 한국 변호사 5명 등 총 15명의 전문인력이 상주하며,단순한 법률자문뿐만 아니라 한국 기업의 진출에 필요한 일체의 서비스를 제공한다.



연초부터 로펌 업계의 동향이 심상치 않다.

법률시장 개방이 초읽기에 들어감에 따라 대형 외국 로펌과의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한 생존의 몸부림이 갈수록 격렬해지는 것.최근 들어 가장 눈에 띄는 변화는 러시아 등 구소련(CIS) 지역으로의 진출이다.

카스피해 유역 등을 중심으로 오일달러가 넘쳐나면서 건설공사 등 사회간접자본(SOC) 사업에 뛰어든 기업들의 동반 진출 요구가 빗발치기 때문이다.

법무법인 화우는 이달 말에 우즈베키스탄의 타슈켄트에서 현지법인 개소식을 열 예정이다.

한국인 변호사 1명과 현지 변호사 2명이 상주하는 형태.일본에 이어 두 번째 여는 해외 현지 사무소다.

해외 진출을 담당하는 임승순 변호사는 "법률시장 개방이 초읽기에 들어간 만큼 장기적으로 새로운 법률 수요를 찾기 위해서는 해외 현지법인 작업을 해야 한다"고 밝혔다.

법무법인 율촌은 우창록 대표변호사가 현지 답사를 위해 직접 러시아와 카자흐스탄을 다녀올 정도로 공을 들이고 있다.

정평과 마찬가지로 지난해 하반기 베트남 호찌민에 둥지를 튼 뒤 곧장 CIS 지역으로 뛰어든 것.해외 사무소 개설에 보수적인 것으로 알려진 율촌의 이 같은 발빠른 행보는 특히 주목할 만하다.

우 대표는 "카자흐스탄만 해도 세계 각국 기업들이 앞다퉈 들어오고 있어 한국 기업들을 더 이상 큰 고객으로 보고 있지 않다"며 "우리 기업들이 현지에서 법률 서비스를 잘 받을 수 있도록 중재하는 일도 시급하다"고 말했다.

이외에도 지평은 러시아 정치학 박사 출신인 류혜정 변호사를 중심으로 사할린 프로젝트 등을 추진 중이며,로고스도 카자흐스탄 등으로의 진출을 타진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사실 CIS 지역에 가장 먼저 깃발을 꽂은 곳은 법무법인 아주다.

아주는 지난해 블라디보스토크(러시아 연해주),울란바토르(몽골),알마티(카자흐스탄),타슈켄트(우즈베키스탄),빈(오스트리아)에 각각 현지법인을 개설했다.

구소련 국가와 동부유럽으로 이어지는 이른바 '유라시아 벨트'를 구축하겠다는 포부다.

총 변호사 숫자가 47명인 중형 로펌치고는 획기적인 발상인 셈이다.

김진한 대표변호사는 "체제 전환국들의 경우 외자유치 등의 기회가 많고,법률적 접근성 면에서는 중국보다 더 낫다"며 "앞으로 5년 안에 세계 30곳 이상 지역에 변호사를 내보낼 계획"이라고 말했다.

한편 우리 로펌들의 '세계의 공장' 중국 공략은 올해도 계속될 전망이다.

법무법인 바른은 대만 유학파 출신의 정익우 변호사를 영입하면서 변호사 5명으로 중국팀을 새로 꾸렸고,베이징에 현지 사무소를 운영하고 있는 법무법인 세종도 내년 1월을 목표로 중국 상하이 사무소 개설을 추진하고 있다.

이미 중국 상하이에 현지 사무소를 운영 중인 법무법인 대륙은 지난해 말 인근의 쑤저우에 사무실을 한 곳 더 개설했다.

대륙 상하이 사무소의 최원탁 변호사는 "쑤저우시 전체에 약 1200개의 한국 기업이 있다"며 "현지법인을 이용하던 한국 기업들을 법률자문하게 되면 새로운 시장이 열리게 되는 셈"이라고 말했다.

박민제 기자 pmj53@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