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자원봉사 아이스하키 코치 카이 소인투 >

지난 16일 오후 6시30분 경기도 의정부시 종합운동장 실내링크.어린이 아이스하키 선수들의 가뿐 숨소리가 링크를 가득 메우고 있었다.

순백색의 은반에서 스케이트를 지치는 어린이들의 해맑은 모습이 더없이 보기 좋았다.

38명으로 구성된 의정부 리틀 위니아 아이스하키 팀.네살배기 어린이도 있다지만 이날은 보이지 않았다.

다음으로 어린 7살짜리 박형은군만 해도 너무 깜찍했다.

어른 덩치의 중학생 형과 함께 전후 좌우로 스케이트를 지치는 기술은 오히려 더 나아 보였다.

헬맷을 써 잘 분간은 안됐지만 여자 어린이 선수도 너댓명은 되는 듯 했다.

이 가운데 연신 '고,고(go,go)'를 외치며 선수들을 독려하는 이가 있었다.

핀란드 출신 코치인 카이 소인투씨(45).나이 탓인지 금발이었을 머리카락이 아이스링크 같은 은색으로 바뀌어 가고 있었다.

직장을 갖고 자원봉사 성격으로 코치를 맡고 있긴 하지만 모습만은 여지없는 '아이스하키계의 히딩크'였다.


소인투씨는 극지방에 가까운 핀란드 태생이어서 다섯살의 어린 나이에 아이스하키에 입문했다.

일베스(ilves)란 이름의 클럽에서 주니어 선수로 활약하며 핀란드 내 주니어 리그 우승을 두번이나 이끌었다.

스무살 되던 1983~84년 시즌에는 리그 준우승에 머물렀지만 개인적으론 최다 득점상을 받는 영예를 안았다.

1984년에는 북미 프로아이스하키 리그(NHL) 트레이닝 캠프까지 참여했다.

프로 선수의 꿈을 키웠던 것.그러나 신체 조건이 북미 선수들에 비해 왜소해 NHL진출의 꿈을 접어야 했다고 한다.

소인투씨 키는 171㎝.그럴 만도 했다.

다시 핀란드로 돌아온 소인투씨는 프로팀 선수로 활약하면서 탐페레대학에서 마케팅과 국제무역학 공부를 병행,석사학위까지 받았다.

지금의 생업은 통나무집 건축과 재료 공급업.그의 인생은 비즈니스와 아이스하키 딱 두개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던 그가 한국과 인연을 맺은 것은 1996년 5월.당시 33세의 청년 소인투씨는 한국 시장 진출을 위한 조사차 한국에 들렀다.

KOTRA와 같은 기능을 하는 핀란드 핀프로 사무실이 있던 서울 광화문 교보빌딩에서 일했다.

지하 교보문고에 자주 들르던 그는 영문서적 코너에서 '아리따운' 현재의 한국인 아내를 만나 수개월간의 '작업' 끝에 결혼에 골인했다.

결혼 이후 서울 창동에 살던 소인투씨는 하계동의 동천 실내아이스링크를 찾아 가끔씩 아이스하키 스케이트팅을 연습하곤 했다.

이때 현 리틀 위니아 아이스하키팀 단장인 이종훈씨의 눈에 띄었던 것이 계기가 됐다.

마침 팀 코치를 물색하던 이 단장이 코치직을 제의했고 소인투씨도 흔쾌히 수락했던 것이다.

소인투씨는 요즘 애들을 가르치기 위해 일주일에 6번씩 실내링크를 찾는다.

리틀 위니아 팀 외에 아마추어 성인 팀 코치도 맡고 있다.

연습시간은 한 번에 2시간.이래 저래 링크에서 보내는 시간만 일주일에 20시간이나 된다.

그렇다고 큰 대가는 없다.

자동차 기름값 정도 받는 게 고작이다.

하지만 그는 정말 사랑하는 무언가가 있다면 시간을 내는 건 문제가 아니라며 대수롭지 않다는 표정을 지어보였다.

또 인터넷이 있어 예전보다는 대면 비즈니스가 훨씬 줄었고 시간 내기가 여간 편해진 게 아니라고 말했다.

소인투씨의 하키 예찬론은 한국인 정서에까지 연결된다.

"하키는 지구상에서 가장 빠른 속도를 요하는 팀 스포츠입니다.

NHL 선수들이 날리는 퍽의 속도는 시속 200㎞에 달합니다.

하키를 했던 사람이 배구 같은 경기를 보다 보면 하품이 나올 지경이죠.한국인들은 빨리빨리를 강조하지요.

한국인들에게 딱 맞는 스포츠가 아닐까요?"

약 3년간 초등학생들을 가르쳐온 소인투씨는 어린 학생들에게 기술보다는 정신 자세를 먼저 강조한다.

"하키는 전형적인 팀 스포츠입니다.

동료 선수와 커뮤니케이션을 하고 각자의 역할을 분담하고 서로 사기를 불어 넣어주다 보면 사회성이 자기도 모르게 늘어나는 걸 알 수 있습니다.

요즘 비즈니스스쿨에서 강조하는 부분이죠.몸을 부딪히면서까지 상대를 이겨야 한다는 강인한 정신력과 자신감 또한 기를 수 있습니다."

그는 자신이 가르쳤던 학생들 중 잠재력 있는 아이들을 핀란드 단기 연수를 받도록 소개해주고 있다.

작년의 경우 2명이 연수를 떠나 8개월간 핀란드에 머물며 하키 기술을 연마했다.

올해는 3명이 연수 중이다.

이 중 한명은 아예 핀란드에서 프로선수의 꿈을 키우며 정착했다고 한다.

한편으론 그 아이가 빠져 전력이 조금 줄은 것이 아쉽다.

내년 1월10일부터 일주일간 춘천 의암빙상장에서 열리는 '2007 강원도컵 전국 초·중·고 아이스하키 대회'를 앞두고 있어서다.

그래도 우승한다는 목표를 세우고 학생들을 조련하고 있다.

소인투씨의 본업인 통나무집 비즈니스는 한국인들의 여가생활이 늘어나고 전국에 펜션이 많아지며 실버타운이 이곳 저곳 생기면서 함께 호황을 누렸다.

하지만 요즘 들어선 고민이 하나 둘 생겨나고 있다.

유로화 강세와 세계적 인플레이션 우려,크게 살아나지 않는 한국 경기가 걱정이라고 한다.

그래도 한국과 핀란드 간의 교류가 눈에 띄게 늘어나고 있어 일할 맛은 난다.

내년엔 핀란드 국적 항공사인 핀에어가 6월 서울~헬싱키 직항로를 개설한다는 희소식이 들린다.

그동안 베이징이나 암스테르담 등을 경유해 핀란드로 가는데 14~15시간 걸리던 비행 시간이 직항로 개설로 9시간으로 줄어들게 된다.

그는 이렇게 남는 시간만큼 한국을 더 사랑하겠노라며 엄지손가락을 들어보였다.

장규호 기자 danielc@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