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로스앤젤레스 공항에서 13시간의 비행 끝에 한국에 도착한 김경준 전 BBK 대표는 교포 1.5세대답게 활발한 모습이었다.

쥐색 양복에 흰색 와이셔츠를 받쳐 입은 김씨는 깔끔한 헤어 스타일과 노타이 차림으로 인천국제공항 계류장에 등장했다.

김씨는 수갑을 찬 손을 옅은 회색 수건으로 가린 채 8번 게이트 입구에서 30여초간 사진촬영에 응했으며 곧바로 호송팀과 함께 계류장으로 다시 들어가 미리 대기하고 있던 검찰 호송차에 올랐다.

취재진은 김씨와 질의 응답 없이 사진촬영만 하기로 검찰과 사전에 합의해 취재진과 호송팀 간의 몸싸움은 벌어지지 않았다.

○…인천국제공항에서 기자들의 질문에 한 마디도 답하지 않았던 김씨는 16일 오후 7시50분께 검찰 엘리베이터를 타러 가면서 "일부러 이때 온 거 아니예요.

민사소송이 끝나서 온 거예요"라는 수수께끼 같은 한 마디를 던졌다.

이 발언의 속뜻을 두고 김씨가 한국행을 선택한 것이 "대선을 앞둔 시점에 귀국하는 게 특별한 정치적 의도가 없다","한나라당이 주장하듯이 '기획 입국'이 아니다"는 등의 의미일 것이라는 분석과 이 후보와 전면전을 벌이러 온 게 아니라는 뜻일 거라는 분석 등 의견이 분분했다.

김씨는 또 검찰 호송차에서 내린 뒤 대규모 취재진을 보자 놀라면서 "와우(wow)"라는 감탄사를 내뱉었으며 검찰청사로 들어가는 30m 가량의 길에서 주위를 둘러보며 큰 웃음을 짓기도 했다.

김씨는 검찰에서 저녁식사로 제공한 불고기 백반을 거의 비웠으며 오랜 해외 생활에도 또박또박한 우리말을 구사해 수사진을 놀라게 했다.

○…김씨가 미국으로 도주한 지 약 6년 만인 16일 서울중앙지검에 모습을 드러내자 여러 가지 의혹 규명에 대한 국민적 관심을 대변하듯 청사 주변에는 오전부터 일찌감치 각 방송사별 중계방송 설비가 마련되는 등 취재 열기가 뜨거웠다.

150여명의 취재진은 김씨가 청사 출입구로 들어오는 30m의 동선을 따라 겹겹이 늘어선 채 혹시나 모를 김씨의 충격 발언이나 돌출행동에 대비했다.

경찰은 이명박 후보 측 단체들이 진입할 것에 대비해 2개 중대 규모인 130여명의 병력을 청사 밖에 배치해 청사 난입 가능성을 사전에 차단했다.

○…이날 김씨가 도착한 인천공항 여객터미널 입국장에는 MB지킴이(한나라당 당원들로 구성된 단체) 소속원 100여명이 모여 "오직 이명박.어떠한 정치 공작과 네거티브가 난무하더라도 MB와 함께 미래로 나갈 것이다","2007의 시대 정신은 오직 이명박"이라는 구호를 외치며 김씨의 입국을 기다렸다.

이들 중 일부는 "김경준은 자폭하라"고 외치며 김씨 사진이 그려진 피켓을 부수고 소란을 피우기도 했다.

또 뉴라이트전국연합이라는 단체는 '제2의 김대업 되려는 사기꾼 김경준의 음모를 저지하라'는 플래카드를 들고 공작정치라며 목소리를 높였다.

○…김씨의 한국행은 언론과의 접촉을 피하기 위한 치밀한 '첩보작전' 속에 진행됐다.

15일(현지시간) 오전 수감돼 있던 미국 연방구치소를 떠난 김씨는 낮 12시10분 로스앤젤레스 국제공항에서 서울로 출발하는 아시아나 OZ201편에 탑승하기까지 수속 카운터와 탑승구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검찰 호송팀은 김씨를 숨기기 위해 버스에 태워 활주로로 직행해 아시아나항공에 탑승시켰다.

각 게이트에 진을 치고 김씨가 나타나기만을 기다리던 취재진은 완전히 따돌림을 당했다.

아시아나항공 측은 검찰이 김씨의 탑승을 확인한 후에도 김씨 탑승 여부에 대해 함구하는 등 극도의 보안을 유지했다.

인천=김인완/김병일/오진우/임기훈 기자 iyki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