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나다 앨버타大 대외교류국 교직원 그레고리 베이커 >

"아임 쏘 배고파 투나잇(오늘 밤 너무 배고파)."

그레고리 베이커씨(36)는 아내와 이렇게 장난을 친다.

캐나다 애드먼튼 출신인 그의 아내는 한국인이다.

베이커씨는 캐나다 앨버타대학의 대외 교류 프로그램 기획을 맡고 있다.

앨버타대의 해외연수 및 교류 프로그램은 모두 그의 손을 거쳐 탄생한다.

그는 1년에 서너 차례 이상 한국을 찾는다.

비즈니스가 가능할 정도로 한국어가 능통하다.

지난달 중순 연세대에서 만난 그는 한국인 아내 덕분이라며 밝은 표정이었다.

그가 한국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된 계기는 '태권도'였다.

1988년 서울올림픽 때 태권도를 본 이후 그는 태권도에 심취했다.

대학교 1학년 때는 캐나다 대표선수로 러시아 페테르부르크로 원정경기를 가기도 했다.

그때 한국어를 배우기로 결심했다.

경기에 참석한 태권도 사범들이 모두 한국인이어서 그들과 자유롭게 의사소통을 하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한국에 첫 발을 내디딘 것은 그보다 3년 뒤인 1995년,연세대에 교환학생으로 오면서다.

그는 첫 수업 시간에 지금의 아내를 만났고 한눈에 반했다.

"한국은 제가 항상 머릿속에 그려오던 모습 그대로였습니다.

아내 역시 오랫동안 만나온 친구 같은 느낌이었고요."

그는 적극적으로 대시했고 마침내 1년 코스인 교환학생을 마치면서 결혼에 골인했다.

원래 그는 대학교 교직원이 될 생각은 없었다.

대학을 마친 후 앨버타 주정부에서 국제 업무를 담당했다.

마침 앨버타주는 1974년부터 강원도와 국제협력 관계를 맺고 있었다.

양측 직원이 1년씩 교환 근무를 하는 프로그램이다.

"제가 가겠다고 자원했어요.

대학시절 맛봤던 한국을 다시 한번 느끼고 싶었죠."

강원도는 서울 신촌에서 체험하지 못했던 한국의 또 다른 이미지를 그에게 보여줬다.

강원도는 자신의 고향인 앨버타주와 분위기가 비슷하다고 했다.

강원도청에서 근무하는 동안 그의 별명은 '미스터,노 프라블럼(Mr.No problem)'."산 좋고 공기까지 맑아 스트레스 받을 일이 거의 없었어요.

항상 웃고 지내다 보니 생긴 별명입니다."

그는 1999년 속초 관광 엑스포 준비 당시를 회상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이 참석하기로 한 큰 행사였다.

그는 행사 준비로 눈코 뜰새 없이 바쁜 나날을 보냈다.

드디어 행사 전날 관광객들을 위한 '페이스 페인팅(face painting)'을 하자는 의견이 나왔고,특명은 그에게 떨어졌다.

시골 마을에 페이스 페인팅을 하는 곳이 있을 리 만무했다.

그러나 운좋게도 평소 알고 지내던 동네 아주머니로부터 장소를 소개받을 수 있었다.

베이커씨는 "강원도 시골에 살았기 때문에 도시와는 다른 한국인의 깊은 정을 실감할 수 있었다"며 "한국에서 살고 싶다는 결심을 한 계기가 됐다"고 말했다.

1년 근무를 마치고 캐나다로 돌아갔지만 그는 한국을 잊지 못했다.

좀 더 보람 있으면서도 한국과 연관된 일을 찾고 싶었다.

한국 대학들과 교류가 많은 앨버타대를 떠올렸다.

"일단 교육 업무를 맡아 평소 신념을 실현하는 게 1차 목표였어요.

한국 대학과 일하고 싶기도 했고요."

2002년 그는 앨버타 주정부에서 앨버타대로 직장을 바꾸었다.

현재 베이커씨는 소원대로 1년에 수차례씩 한국을 찾는다.

최근 방한 때는 성균관대를 찾아 명륜당을 방문하기도 했다.

그는 앨버타대와 교류를 원하는 대학들과 교류 프로그램을 짜고,한국 학생을 앨버타대 영어연수 프로그램에 유치하는 일을 하고 있다.

베이커씨는 "영어 프로그램에 한국 학생들이 크게 늘어 기쁘다"며 "캐나다에서도 한국 학생들과 어울리는 것을 즐긴다"고 말했다.

우리나라 교직원들에 대해서도 색다른 시각을 보였다.

"한국 교직원들의 스타일은 캐나다와는 완전히 달라요.

캐나다 직원들은 제각각입니다.

각자 맡은 일이 있기 때문에 다른 사람이 무슨 일을 하는지 알 수 없죠."

그는 캐나다 교직원은 조립식 장남감 같은 구조라고 했다.

하지만 한국 교직원은 개개인이 분리되지 않은 유기체로 하나의 생명체를 형성하고 있다는 게 그의 분석."한국 교직원들은 모두 한 방향을 보고 일하고 있어요.

무슨 일이 있으면 한꺼번에 그 일을 끝내고,다음 일로 넘어가죠.캐나다 대학보다 단합도 잘 되는 것 같아요."

베이커씨는 기회가 되면 한국에서 교직원으로 일하고 싶다는 바람을 나타냈다.

그는 한국의 매력에 대해 "한국은 100㎞가 멀고 캐나다는 100년이 길다"고 설명했다.

한국의 국토는 좁지만 유구한 역사를 지닌 반면 캐나다는 국토가 넓지만 역사는 짧다는 뜻이었다.

그는 "경복궁은 결혼 기념사진 촬영을 했던 곳"이라면서 "도시 한가운데 이런 옛 건물이 많은 것은 '축복'"이라고 말을 맺었다.

글.사진=성선화 기자 do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