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0일 인천 재능대학교 재즈음악과 연습실.

"그 드럼은 소리가 좀 별로니까 제 방에 있는 걸 가져오겠습니다.

드럼이 놓인 순서도 고치고요.

학생들이 신문에 나온 사진 보고 '교수님이 연주를 엉터리로 한다'라고 생각하면 안 되잖아요."

인터뷰 사진을 찍기 위해 기자가 제멋대로 드럼 세트를 옮겨놨더니 포레스트 뮤서 교수(34)가 싱긋 웃으며 다시 정리를 했다.

이 학교에서 작곡과 드럼을 가르치는 그는 학생들 사이에서 완벽주의자로 통한다.

과연 소문대로였다.

미국 캘리포니아주 세크라멘토 출신인 그는 인터뷰 내내 한국어 쓰기를 고집했다.

문법이나 어휘 사용이 거의 한국인과 다름이 없을 정도로 정확했다.

뮤서 교수는 "학생들을 제대로 가르치려면 한국어도 잘해야 한다"며 "6년째 한국 생활하면 이 정도는 할 수 있다"고 겸손해 했다.

그는 미국에 있을 때부터 한국어 학원을 다니며 한국 생활을 준비했다.

자신이 직접 녹음한 한국어 테이프를 매일 듣고 다닐 정도였다.

"포레스트 뮤서 교수는 뭐든 시작하면 끝을 봐요.

교수가 워낙 착실하고 꼼꼼하다보니 학생들이 알아서 따라오죠."

옆에 앉아 있던 유성희 교수(36)는 뮤서 교수가 너무 열심히 가르쳐 동료 교수들도 부담스러워할 정도라고 한마디 했다.

미국 유학을 마치고 2001년 귀국한 유 교수(피아노 전공)는 예체능과 실용 학문 전문인 재능대학에서 전임교수를 맡았다.

뮤서 교수의 한국 입국은 그로부터 1년 반 뒤.그가 그토록 한국어를 열심히 공부했던 또 다른 이유는 바로 유성희 교수였다.

버클리 음대 학생 시절부터 둘은 미래를 약속한 사이였다.

그리고 지금은 부부이자 동료 교수로 한국에 자리를 잡았다.

"버클리 음대에서 재즈 연주회를 준비하다가 처음 유 교수를 만났어요.

베이스를 치던 친구가 실력이 좋다며 함께 연주할 것을 제안했죠.아시아에서 온 다른 여학생들과 달리 털털하고 활발한 점에 끌렸어요."

두사람은 음악적 성향이나 추구하는 방향에서 공통점이 많았다.

음악은 단순한 취미가 아니라 '헌신의 과정'이며,재즈의 생명은 즉흥성이지만 그 바탕에는 분석적이고 냉철한 이성이 있어야 한다는 생각도 같았다.

가볍고 부담없는 음악만 소비되기 쉬운 요즘이지만 둘은 정통 재즈를 알리는 데 힘을 모으기로 결심했다.

뮤서 교수는 어릴 때부터 교회 합창단을 시작으로 음악만이 내 길이라고 여겨왔다.

그는 피아노,플루트,색소폰,기타,드럼 등 온갖 악기에 몰입했다.

버클리 음대에서는 작곡을 파고들었고 요즘은 녹음(레코딩)과 같은 기술 분야에도 도전하고 있다.

음악의 세계는 끝이 없다는 게 그의 지론이다.

"드럼도 남들이 보면 그냥 '치는 것'으로 보이지만 간단하지 않아요.

기술적으로 익힐 것은 적을지 몰라도 한차원 실력을 높이려면 오랫동안 파고 들어야 합니다.

그래서 드럼 연습은 인격 수양과 같다고 학생들에게 가르칩니다.

"

뮤서 교수와 유 교수가 전임 교수를 맡은 후,재능대 재즈교육과는 국내 유일의 재즈 전문 학과로 자리를 잡았다.

재즈와 가요,작곡 등을 모두 아우르는 타 대학의 실용 음악과는 다르다.

그가 최근 도전하고 있는 영역은 재즈 합창단.국내에선 아직 생소한 커리큘럼이다.

벌써 이를 배우려고 문을 두드리는 지망생들이 줄을 잇고 있다.

둘은 재즈 연주자로서 명성도 굳히고 있다.

뮤서 교수와 유 교수가 드럼과 피아노로 만난 밴드 '포유넥서스'는 올 들어 EBS의 라이브 방송에서 두 차례 콘서트를 열어 재즈 팬들에게 익숙한 얼굴이 됐다.

활동 7년만에 세 번째 음반이 올 상반기에 나왔다.

뮤서 교수는 자신의 이름을 단 재즈오케스트라(빅밴드) '포조'와 프로젝트밴드 '테이스트 오브 재즈'도 이끌고 있다.

"모든 곡을 직접 작곡하거나 편곡하기 때문에 큰 자부심을 느낍니다.

한국에서의 생활과 추억이 모두 음악이 되죠."

포유넥서스의 3집 음반에 실린 곡도 모두 사연이 있다.

가장 흥겨운'댄싱망고'는 그들이 기르는 고양이'망고'를 떠올리며 쓴 곡이다.

유 교수는 특히 아끼는 곡으로 '30일'을 꼽았다.

"한 달 동안 해외출장을 다녀오니 뮤서 교수가 노트 하나를 주더군요. 저를 생각하며 하루 한 편씩 쓴 시 30편이 담겨 있었죠." 유 교수의 보답은 그 시를 바탕으로 작곡한 곡 '30일'이었다. 꼼꼼하고 이성적인 뮤서 교수와 넉넉하고 따뜻한 유 교수의 대조적인 성격은 재즈를 통해 매일 새로운 화학 반응을 일으킨다.

뮤서 교수에게 가장 보람찬 순간은 열심히 가르친 학생들이 '음악을 진지하게 생각하는 사람'이 됐을 때다.

"재즈의 역사가 짧은 한국에 미국 못지 않게 재즈 애호가들이 많은 것이 놀랍습니다."
그의 도전은 계속되고 있다.

내년에는 자신만의 연주를 오롯이 담은 솔로 음반을 낼 계획이다.

"빠르게 발전하는 한국은 연주마다 새로운 재즈와 비슷합니다. 그 다이내믹한 부분이 제 음악적 상상력을 자극하죠.한국은 제 음악을 펼쳐내는 소중한 무대입니다."

김유미 기자 warmfron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