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의 사회적 책임(CSR:Coporate Social Responsibility) 내지 기여는 어쩔 수 없이 지불해야 하는 비용이나 부담이 아니라 새로운 비즈니스 기회를 제공하고 기업의 브랜드 및 이미지를 높이는 데 필수불가결한 요소가 되었습니다. CSR는 기업경쟁력의 원천이라는 발상의 전환이 필요한 시대입니다. 이를 인식하고 실천하는 기업은 지속성장이 보장되고 그렇지 않으면 시장에서의 현재 지위를 유지하기 어렵게 될 것입니다."

2년 전 타계한 '현대 경영학의 아버지' 피터 드러커가 생전에 마지막까지 학생들을 가르쳤던 미국 클레어몬트대학 드러커경영대학원의 아이라 잭슨 학장은 "비즈니스적인 관점에서 기업의 사회적 책임(CSR) 이라는 화두가 최근 들어 기업경영의 핵심으로 부상하고 있다"고 역설했다.

한국경제신문은 지난 14일 서울 롯데호텔에서 한국 피터 드러커 소사이어티(상임대표 조동성 서울대 경영대 교수)가 제정한 '피터 드러커 혁신상' 시상식에 참석차 방한한 잭슨 교수와 조동성 교수,남승우 풀무원 사장과의 대담을 통해 CSR 경영의 최근 동향에 대해 알아보았다.

―조동성 서울대 경영대 교수=오늘날 기업의 최고 경영가치는 무엇이라고 보는가

▷아이라 잭슨 학장=기업경영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눈에 보이는 유형자산이 아니라 인적자원과 브랜드 가치 같은 무형자산이다. 따라서 CEO(최고경영자)는 대학과 긴밀하게 연계해서 창조적 인재를 키우는 데 주력해야 한다.

―조 교수=지난 7월 제네바에서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 주도로 인권 노동 반부패 환경 등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강조한 글로벌 콤팩트(global compact)회의가 열렸다.

기업의 사회적 책임이 세계 경제의 화두로 등장한 배경은.

(글로벌 콤팩트에는 현재 전 세계 4500여 기업이 가입해 있다.)

▷잭슨 학장=미국 장난감 회사 마텔은 최근 중국산 수입 장난감에서 인체에 유해한 납 성분이 검출됐다는 소식이 알려지자 곧바로 대규모 리콜을 결정했다.

리콜로 인해 엄청난 금전적 손실을 볼게 뻔한데 왜 이런 선택을 했을까.

소비자의 신뢰가 어떤 금전적 손실보다 더 중요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오늘날 소비자들은 기업의 비윤리적 행위를 그냥 봐주지 않는다.

사회적 책임을 다하지 않으면 기업의 평판이 나빠지고 고객을 잃게될 뿐 아니라 핵심 직원들이 이탈할 수도 있다.

위대한 회사를 만드는 데는 30년 이상의 세월이 필요하지만 추락하는 데는 30초도 걸리지 않는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조 교수=기업 입장에선 사회적 책임에 따른 비용이 부담스럽지 않겠나.

▷잭슨 학장=꼭 그렇게만 봐서는 안 된다.

미국 금융당국이 흑인 히스패닉 등 소수인종 차별을 금지한 1990년대 나는 보스턴은행의 부사장으로 일하고 있었다.

당시 대부분의 은행들이 이 조치를 규제로 여기고 사실상 외면했지만 보스턴은행은 이를 새로운 비즈니스 기회로 보고 정부 정책에 적극 호응했다.

덕분에 보스턴은행은 백악관에서 상을 받고 고객들의 평판도 높아졌다.

새로운 시장에 진입하기 위해 금융당국의 승인을 받을 때도 상당한 덕을 봤다.

생활소비용품 업체인 P&G(프록터&갬블)의 경우를 보자. 이 회사는 전 세계 20억명의 빈곤층을 타깃으로 한 제품 개발에 주력한다고 한다.

이 회사는 빈곤층에 관심을 기울여 장기적인 비즈니스 기회를 여기서 찾고 있다고 봐야 한다.

P&G의 CEO는 '사회적 책임이 아니라 사회적 기회(social opportunity)를 추구한다'고 말할 정도다.

이는 향후 기업마케팅의 신조류가 될 것이다.

―남승우 사장=기업은 이윤 창출 과정에서 좋든 나쁘든 사회에 영향을 끼치게 된다.

사회적 책임은 부작용에 대한 보상 성격이 있다고 보는데.

▷잭슨 학장=드러커는 '비즈니스 리더는 의사처럼 행동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윤 창출을 위해 사회에 해악을 끼치지 말라는 것이다.

구글의 모토가 '악해지지 말자(Don't be evil)' 아닌가.

스타벅스는 파트타이머를 포함해 14만명에 달하는 모든 직원들에게 스톡옵션을 주고 의료보험을 제공한다.

좋은 대우를 받는 직원이 고객에게도 최상의 서비스를 한다는 믿음에서다.

광고라고는 일절 하지 않는 스타벅스가 시가총액 200억달러의 세계적 커피 체인으로 성장한 배경에는 이런 믿음이 깔려 있다.

―조 교수=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강조하다 보면 효율성이 희생될 우려는 없나.

▷잭슨 학장=시장의 효율성과 사회적 책임 사이에 균형점을 찾는 게 중요하다.

물론 정부나 비영리단체도 사회적 책임만 강조할 것이 아니라 효율성을 함께 갖춰야 한다.

하지만 지나치게 효율성만 강조해선 안된다는 점을 지적하고 싶다.

MBA 스쿨(경영대학원)들이 주어진 자원을 어떻게 배분해야 최대의 성과를 낼 수 있을지를 가르치는 데 너무 치중하는 경향이 있다.

이제 기업의 핵심자산은 창조적 인재이며 기업의 평판과 브랜드 가치가 핵심 경쟁력이라는 것을 더 많이 가르쳐야 한다고 본다.

브랜드 가치가 높고 평판이 좋은 기업에 창조적인 인재가 몰리고 그러면 기업은 지속성장한다.

―남 사장=한국이 창조적 인재를 키우려면 어떻게 해야하나.

▷잭슨 학장=한국은 지난 수십년간 놀라운 성공을 거뒀다.

한국인의 높은 교육열과 생산성,기술 혁신에 대한 노력이 이를 가능하게 했다.

하지만 과거의 성공에 안주해선 안 된다.

한국이 미래를 창조하는 나라가 되려면 창조적 인재를 많이 길러내야 한다.

이를 위해선 개개인의 차이를 존중하고 다양성이 발달할 수 있는 풍토를 만들어야 한다.

지난 10년간 세계에서 가장 성공한 기업이라는 구글이 한 예가 될 수 있다.

구글은 직원들에게 1주일에 하루 정도는 '구글과 관련되지 않은 일'을 하도록 요구한다.

직원들은 자전거를 타고 야외에 나갈 수도 있고 자원봉사를 할 수도 있다.

틀에 박힌 일에 얽매이지 않고 자유롭게 사고하면서 창조적인 생각을 키우는 것이다.

―조 교수=드러커식 경영이란 관점에서 한국 기업에 조언을 한다면.

▷잭슨 학장=도요타나 스타벅스,제너널일렉트릭(GE) 같은 기업에 가서 성공 요인을 물어보면 그들이 공통적으로 강조하는 게 사람에 대한 투자다.

지식 노동자의 창조성을 높이고 기업의 이익과 사회적 책임의 균형을 추구하는 것이다.

드러커가 강조한 것도 이런 것이다.

많은 경영자들이 비즈니스를 '사이언스'(과학)로 생각하지만 드러커는 '리버럴 아트'(인문학)라고 강조했다.

숫자(재무제표)에만 초점을 맞추지 말고 사람을 봐야 한다.

정리=주용석 기자 hohobo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