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강해이 넘어 강력범죄까지..시민 '경악'.경찰 '허탈'

경찰 임용 관리시스템 "구멍뚫렸다" 철저 점검 지적

경기도 고양시 대화역 주차장에서 부녀자를 수차례 납치.성폭행하고 돈을 빼앗은 범인이 지구대에서 근무하는 19년 경력의 현직 경찰관으로 드러나 커다란 충격을 주고 있다.

이 사건은 경찰관이 뇌물수수, 성추행 등 일상적인 비위와 품위손상 차원을 넘어 이제 강력범죄까지 서슴치 않았다는 점에서 경찰 내부에선 "얼굴을 들 수 없게 됐다"는 자탄의 목소리가 터져 나오고 있다.

특히 비리혐의로 면직됐다 복직된 이 경찰은 평소에도 근무태도가 좋지 않아 근무지가 자주 교체됐고최근까지 경찰 내부에서조차 감시를 받는 관리 대상자로 드러나 경찰의 조직과 인사관리에 구멍이 뚫렸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20일 경기도 일산경찰서에 체포돼 강도.강간 혐의 등으로 구속영장이 신청된 경찰관은 이모(39) 경사.
이 경사는 올 1월부터 최근까지 경기도 고양시 일산선 전철 대화역의 환승주차장에서 혼자 승용차에 타는 20-40대 여성을 흉기로 위협해 납치를 시도, 3차례 성공해 성폭행하고 돈까지 빼앗았다.

이 경사의 범행 수법은 그야말로 '경찰이기를 포기한 인면수심의 강력범' 그 자체였다.

경찰 학교에서 범인을 잡으려고 배운 기술에 교도소를 수시로 드나드는 강력범들이 하던 수법을 더해 그대로 활용한 것이다.

그는 6차례 모두 어둡고 인적이 드문 시간대와 장소를 골라 범행하고 흉기를 사용했다.

경찰 조사 결과 19일 검거 당시 그는 복면과 마스크 등으로 자신의 얼굴을 가렸고 지문이 발견되지 않도록 손가락에 테이프를 감는 용의주도함까지 보여줬다.

또 이 경사는 범행현장으로부터 왕복 8차로 건너편 건물에서 망원경으로 관찰하던 잠복 경찰관들이 현장으로 다가가는데 채 5분이 걸리지 않았지만 이미 테이프로 피해자 손발을 묶은데 이어 의자에 고정시키는 작업을 하는 능숙함을 보였다고 현장에 출동했던 경찰관은 전했다.

이 경사의 납치 후 행각은 더욱 충격적이다.

그는 피해 여성으로부터 신분증을 빼앗은 뒤 피해 여성이 직접 카드로 현금 인출하게 하면서 "주소 등 신분을 모두 알고 있으니 도망가면 가족들을 죽이겠다"고 협박했으며 비교적 젊은 두 피해 여성은 성폭행하고 이 가운데 1명에게는 변태적인 성행위까지 강요한 것으로 드러났다.

경찰은 이 경사가 현금인출기의 CCTV에 자신의 모습이 촬영되는 것을 피하고 피해 여성들이 신고하지 못하게 하기 위해 이런 나쁜 짓을 한 것으로 보고 있다.

이 경사는 또 앞쪽에는 화단으로, 양 옆에는 다른 차량으로 3방향이 막힌 피해자 차량에 탑승해 있다 경찰차량이 뒤를 막아서자 마치 영화에서나 보듯 이를 박고 달아나려다 여의치 않자 조수석 문을 열고 도주를 시도하기도 했다.

경찰에 따르면 이 경사는 직장 생활도 문제 투성이인 '관리대상자'였다.

관리대상자는 경찰 내부의 감시를 받는 직원으로 매달 한차례씩 해당자의 근무보고서가 작성돼 지휘관에게 보고되는데 이런 그가 9개월동안 강력범행을 했다는 점에서 경찰의 인사 관리 시스템에 구멍이 뚫렸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1989년 순경으로 임용돼 김포경찰서에서 경찰관 생활을 시작한 이 경사는 1997년 광명경찰서 근무 당시 뇌물을 수수한 혐의로 면직됐다 무혐의로 결론나 이듬해 복직됐지만 이후에도 근무태도에 문제가 많아 근무지를 자주 바꾼 것으로 알려졌다.

일종의 징계 차원이었다.

하지만 그는 지난해 10월 또다시 범행 동기가 됐던 공무원윤리강령 위반(빚보증)을 하게 되고 도박 등으로 물의를 빚은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이 건으로 일산경찰서 탄현지구대에서 고양경찰서 원당지구대로 배치됐다.

이후 지구대장이 매달 이 경사의 근무태도 등에 대한 동향보고서를 서장에게 제출해야 하는 관리대상자 신세로 전락했다.

경찰이 비리와 불성실한 근무태도 등으로 인해 문제가 있는 경찰관을 제대로 관리하지 못해 결과적으로 강력범죄자를 만들게 방치한게 아니냐는 지적도 그래서 나오고 있다.

경찰은 19일 현장에서 범인을 검거한 뒤 한솥밥을 먹었던 동료 경찰관임을 확인한 뒤 일선 관련 부서와 관계자 전원에게 외부 언급 자제를 강력 지시했고 이날까지도 일부 간부급만 제대로 알고 있었던 것으로 드러나 물의를 빚기도 했다.

일산에 거주하는 박모(31.여)씨는 "시민들을 보호해야 할 경찰이 시민을 상대로 범행을 저질렀다니 충격적이다"면서 "경찰관들의 인성검사를 강화하고 이런 사고를 막기 위한 방안이 마련돼야 하는 것 아니냐"고 말했다.

일산경찰서 관계자는 "검거할 때 얼굴을 보고 같이 근무하는 직원인 것을 알고 매우 놀랐다"며 "같은 경찰관으로서 입이 열개라도 할 말이 없다"고 말했다.

(고양연합뉴스) 강병철 이한승 기자 soleco@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