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당 7만원을 받을 것인가,과태료 200만원을 낼 것인가."

내년부터는 법원으로부터 '배심원으로 법정에 나와달라'는 우편물을 받으면 이런 고민을 해야 한다.

일반국민이 형사재판의 배심원으로 참여해 유·무죄에 대해 평결하는 '국민참여재판'이 도입되면서 배심원에게 권리 못지않은 의무가 부과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과태료 부과는 위헌의 소지가 있다는 지적이 제기돼 논란을 빚고 있다.

◆소집통보에 응하지 않으면 과태료

대법원 관계자는 23일 "배심원 후보자에게 하루 4만원,배심원에게는 7만원의 일당을 지급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고 말했다.

대법원은 9월에 실시할 모의재판에 참여하는 배심원을 최근 모집하면서 이 같은 수당 지급 방침을 확정했다.

내년부터 시행될 국민참여재판의 경우 올해 말 대법관회의를 통해 배심원의 일당을 결정할 예정이지만 이번 모의재판과 같은 수준을 보일 것으로 전망된다.

필요에 따라 여비와 숙박비도 지급된다.

법원은 이번 모의재판을 위해 700명의 국민을 무작위로 추출해 참여 의사를 물었지만 제도가 본격 시행되면 배심 참여는 '국민의 의무'가 된다.

법원은 60명 안팎의 성인 남녀를 주민등록에 근거해 무작위로 추출한 뒤 참석을 통보할 예정이다.

우편이 송달되지 않는 경우를 감안하면 40명 안팎의 배심원 후보자가 지정된 기일에 출석할 것으로 전망된다.

정당한 사유 없이 출석하지 않는 배심원 후보자에게는 법원이 200만원 이하의 과태료를 물린다.

지정 기일에는 배심원 후보자 40명을 상대로 재판장 검사 변호인 등이 설문조사를 실시해 부적합 여부를 가려 12명의 배심원(예비 배심원 3명 포함)을 선정한다.

배심원에 선정되지 않기 위해 허위로 답변을 할 경우 마찬가지로 과태료가 부과된다.

배심원은 재판에 참석해 심문 과정을 지켜보고 마지막에 평의를 통해 유·무죄를 가리게 되며 재판에 참석하지 않아도 과태료를 물어야 한다.

◆배심원 인권침해 등 위헌 논란


'전관예우' 등 재판의 불공정 논란을 없애기 위해 국민이 재판에 참여키로 했지만 이를 국민의 의무로 규정하는 것이 타당한지에 대한 논란이 불거지고 있다.

개인적인 사정으로 인해 배심원으로 출석하지 못한다고 해서 과태료를 물리는 게 타당하냐는 지적이다.

특히 배심원이 아니라 '후보자' 단계에서부터 불출석시 과태료를 물리는 데 대해 일각에서는 '위헌 소지가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이준형 중앙대 법대 교수는 "공정한 재판을 하는 것은 국가의 의무이지 국민의 의무가 아니다"며 "배심원은 국민의 4대 의무도 아니며 후보자 단계에서부터 불참했다고 해서 과태료를 내라는 것은 인권 침해의 소지가 있다"고 지적했다.

법무법인 김앤장의 한 변호사도 "국민들이 각자의 생업이 있는데 생업을 포기하고 재판에 참석하라면 제대로 된 판단을 내리겠느냐"며 "자발적으로 참여하려는 사람들을 중심으로 '배심원풀(Pool)'을 구성해 배심원을 선정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에 대해 강일원 법원행정처 사법정책실장은 "재판에 참여하겠다는 국민의 요청에 따라 제도가 만들어진 만큼 의무를 부과하기 위해 과태료 규정을 마련했다"며 "의무를 부과하지 않으면 배심원제도가 유지되지 않으며 외국에서도 불출석자에 대해 비슷한 제재 수단을 규정하고 있다"고 반박했다.

정태웅 기자 redae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