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정거래위원회가 지난 6월 손해보험사들에 일반보험 담합 판정을 내린 뒤 손보업계는 심각한 내홍을 겪고 있다.

공정위의 보험료 담합조사 때 자진신고한 3개 손보사들 때문이다.

동부화재 한화손보 대한화재 등 3개 손보사는 공정위의 담합 조사 과정에서 자진신고하고 과징금 감면을 받았다.

나머지 업체들은 이들이 '상도의'를 어겼다며 업무협조를 거부하는 등 험악한 분위기가 연출되고 있다.

업계에서는 그동안 회사들간 우의가 돈독했던 회사들이 '공정위에 협조한 쪽'과 '그렇지 않은 쪽'으로 양분될 위기에 처했다며 답답해 하고 있다.


공정위가 담합 조사의 편의를 도모하기 위해 도입한 '자진신고 감면제(리니언시 프로그램)'가 업계의 협력 관계를 송두리째 흔들고 있다.

과징금 부담이 상대적으로 클 것으로 예상되는 업계 1~2위권 회사들이 자진신고 대열의 맨 앞줄에 서면서 손보업계를 비롯해 신용카드업계 석유화학업계 제당업계 등이 담합 조사 후폭풍에 시달리고 있다.

손보사들 중 가장 먼저 자진신고한 것으로 알려진 동부화재는 "100억원이 넘는 과징금을 피하기 위한 현실적인 선택이었다"고 항변했지만 다른 업체들은 "공정위 조사에 어떻게 대응할지를 논의한 회의까지 고스란히 고해바친 것은 해도 너무했다"는 반응이어서 갈등의 골은 점점 더 깊어져 가고 있다.

지난 2월 공정위는 석유화학업체 10곳이 폴리프로필렌(PP)과 고밀도폴리에틸렌(HDPE) 가격을 담합했다는 혐의를 잡고 1051억원의 과징금을 부과하는 시정조치를 내렸다.

이 과정에서 PP 시장 1위,HDPE 시장 4위 업체인 호남석유화학이 자진신고 감면제도를 통해 약 1000억원에 가까운 과징금을 면제받았다.

2~3위권의 삼성종합화학과 삼성토탈도 자진신고 대열에 동참,30%의 과징금을 감면받는 혜택을 누렸다.

다른 업체들은 유화협회 회장사이기도 한 호남석화가 자수 대열의 맨 앞자리에 서자 충격에 빠졌다.

이 때문에 더 이상의 '상생협력'을 기대하기 어려운 분위기가 됐다.

카드사들이 결제정보 처리업체(밴·VAN)에 지급하는 수수료를 담합해 인하했다는 내용을 전업 카드업계 1,2위인 LG카드 삼성카드가 앞다퉈 자진 신고한 것도 신용카드 업계 내부의 반목과 불신을 키웠다.

한편 이처럼 담합으로 가장 많은 이익을 얻은 회사가 자진신고 프로그램으로 과징금까지 면제받는 제도적 허점에 대한 비판이 일면서 자진신고 감면제도의 개편이 논의되고 있다.

담합 사실을 가장 먼저 자진 신고했더라도 담합을 주도했거나 이를 강요한 기업이라면 과징금을 감면받는 등의 혜택을 받기 어렵게 하는 내용이다.

미국 EU 등도 이런 부작용을 우려해 자진신고 감면제도에 예외조항을 두고 있다.

미국은 감면 혜택을 받으려면 타 사업자에게 불법행위를 강요한 사실이 없어야 하고 주도자가 아니어야 한다는 조건이 붙는다.

EU는 다른 사업자에게 담합행위를 강요한 경우에 면제 또는 감면 혜택에서 제외되도록 하고 있다.

이에 반해 한국은 자진신고 감면제도를 도입하면서 아무런 제약을 두지 않아 세계에서 가장 폭넓고 예외없는 감면제도를 가진 나라가 됐다.

차기현 기자 khch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