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미드 카르자이 아프가니스탄 대통령이 5일 오후(현지시간) 미국을 방문,워싱턴 DC 서쪽 커톡틴 산맥에 있는 대통령 별장 캠프 데이비드에서 조지 W 부시 대통령과 만찬을 겸한 정상회담을 가졌다.

한국인 인질 사태가 국제적인 돌발 현안으로 부각되었지만 탈레반과 전쟁에 몰입해온 두 나라 정상이 공개적으로 논의하기엔 너무 부담스런 주제였을까.

두 정상은 탈레반의 만행을 강력히 규탄했을 뿐 납치 사태에 대한 해결책은 사실상 시사하지 않았다.

오히려 아프간의 치안 불안을 거론하며 탈레반과의 전쟁에 더욱 박차를 가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카르자이,"반탈레반 전쟁에 박차"

카르자이 대통령은 회담장에 도착하자마자 기자들에게 "지난 2년간 아프가니스탄의 치안 상황이 악화됐다"고 말했다.

이어 "이 전쟁에서 이기도록 속도와 효과를 더욱 높이기 위해 모두 최선을 다 해야 한다"고 말했다.

구체적인 인질 해법은 없었다.

카르자이 정권은 미국의 비호하에 2004년 정식 집권했으나 수도 카불을 중심으로 북부만 장악했을 뿐이어서 3만5000여명의 외국 군대가 철수하면 자립할 수 없다.

그는 미국이 아프간을 침공한 명분이었던 오사마 빈 라덴에 대한 체포 작업과 알 카에다 소탕 작전도 "전혀 진전이 없었다"며 미군이 계속 주둔해야 할 필요성만 역설했다.

AP통신은 민간인 사상자가 늘어나면서 정권 기반이 흔들리고 있는 카르자이 대통령이 "탈레반과의 전쟁을 위해 무엇을 해도 좋다.

민간인이 다치지만 않게 해달라"는 메시지를 미국에 전달한 것으로 보인다고 보도했다.


◆이슬람 NGO 활용 가능성

미국과 아프간 정부가 도와주지 않는다면 한국인 인질 사태와 관련해 정부는 사실상 고립무원이다.

탈레반 납치세력은 유엔의 안전보장을 조건으로 한국 정부와 대면 접촉을 갖고 싶다고 제안했지만 성사되기 어렵다.

정부 당국자는 "탈레반이 유엔 공인 테러리스트가 되도록 정부가 중재를 하라는 것이냐"고 말해 유엔에 협조를 구하는 것은 있을 수 없음을 강하게 시사했다.

정부는 대안으로 적신월사(赤新月社·터키 중심 적십자사)등 이슬람권에서 존중받는 비정부기구(NGO)의 중재로 납치세력과 대면하는 방안을 신중하게 검토하고 있다.

정부가 적신월사에 도움을 요청하려는 데는 이슬람권에서 대탈레반 압박 여론이 형성되기를 기대하는 측면도 있다.


◆장기 홍보전에 기대는 정부

정부 당국자는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홍보전 외에 많지 않다"고 토로했다.

정부는 현재 아프간 국내 및 주변 이슬람 국가에서 이번 인질 사태에 대한 비난 여론을 일으켜 탈레반을 압박하는 데 주력하고 있다.

한국 정부가 압박할수록 카르자이 정권도 탈레반에 대해 강경해지고 있어 죄수와 인질 맞교환이 성사될 가능성은 점점 희박해지고 있다.

탈레반이 반군으로 남기를 원하지 않고 정권 재창출에 궁극적인 목적이 있는 만큼 주변국의 여론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다는 게 우리 정부의 판단이다.

정부의 이 같은 전략은 사태 장기화를 염두에 두고 있다는 뜻이다.

정부 당국자는 "탈레반은 인질 두 명이 위독하다면서 약과 의사 진찰을 거부하고 있다.

그들도 심리전이 주요 전략"이라고 말했다.

정지영 기자 coo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