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매주 토요일 오후 교보문고 광화문점.어린이 영어 코너에는 엄마들보다 아빠들로 더 붐빈다.

유모차를 끌고 온 아빠,아이를 무릎에 앉히고 영어책을 읽어주는 아빠,포대기로 아이를 업고 육아책을 읽는 아빠까지."한자능력검정시험이 얼마 남지 않아 아이에게 한자책을 사주러 나왔어요.

" 지난달 27일 이곳에서 만난 종합상사 회사원 김종문씨(37)는 "주말엔 초등생 딸과 함께 교보문고에 오는 게 일상화되었다"고 말했다.


#2 초등학교 5학년과 2학년에 다니는 남매를 두고 있는 회사원 김삼곤씨(40)는 아이 학습 관련 사이트에 회원으로 등록하고 거의 매일 들어가 본다.

과거 어머니들이 모여 학원 얘기를 했듯이 이젠 직장에서 아버지들이 인터넷으로 아이들 공부 얘기를 주고받는다.

회사원 고재수씨(38) 역시 초등학교 3학년 딸의 시험 기간에는 평소보다 일찍 퇴근해 아이 공부를 봐준다.

그는 "매달 서점에서 영어 교재와 테이프를 구입해 딸 아이에게 가르쳐 준다"고 설명했다.


'자식 교육에 신경쓰는 쪽은 어머니'라는 고정관념을 비웃기라도 하듯 최근에는 젊은 아버지들 사이에서 자식 교육에 대한 관심과 기대 수위가 높아지고 있다.

유치원생이나 초등학생 자녀를 둔 30대 초반에서 40대 초반 아버지들은 급식 배급 등의 학교일에 발 벗고 나서거나 학원 캠프에 아이들과 함께 참가하는 등 과거 어머니들의 '치맛바람' 뺨치는 '바짓바람'을 일으키고 있다.

전문가들은 바짓바람에 대해 명예퇴직 등으로 치열한 경쟁사회를 몸소 체험하고 있는 신세대 아버지들이 자식만큼은 좀 더 잘되길 바라는 마음에 강한 교육열이 발동했기 때문으로 풀이했다.

맞벌이생활 등으로 아내의 사회활동과 가계 기여도가 높아지면서 '자식교육 등을 분담하지 않으면 나중에 소외당할 수 있다'는 인식이 아버지 사회에 번졌다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서울 송파구 거여초등학교.이곳에는 어머니회가 아닌 '아버지회'가 있어 교통정리,급식 배급까지 아버지들이 도맡아 한다.

토요 휴무일에는 '가을맞이 허수아비 만들기' '자연 생태계 관찰'과 같은 행사를 통해 아버지들과 아이들이 함께 시간을 보낸다.

거여초교 아버지회 명예회장인 박해두씨는 "학교에 봉사하는 아버지를 보면서 아이들이 자부심을 갖는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면서 "봉사하는 삶을 가르치는 교육적인 효과도 크다"고 뿌듯해 했다.

아버지들의 변신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학교도 늘고 있다.

용인 대청초등학교는 올해부터 매주 금요일 오후 8시30분부터 도서실을 아버지들에게 개방해 '아빠와 함께 하는 별빛 독서교실'을 열었다.

이 학교는 아버지들의 참여열기에 고무돼 2학기엔 '아빠와 함께 하는 음악회' '아빠와 함께 하는 자전거 하이킹' 등 다양한 행사를 마련할 계획이다.

젊은 아빠들의 자식 공부 챙기기는 공교육에만 머물지 않는다.

사설 교육 기관에서 열리는 학부모 설명회에서도 아버지들이 어머니들을 밀어내고 있다.

장혜연 와이즈만 영재교육원 대리는 "해외 캠프 사전 모임이 있었는데 아버지와 온 아이들이 어머니랑 온 아이들보다 많았다"면서 "아버지들이 아이들 옷에 어떻게 이름표를 붙여줘야 하는지,용돈은 얼마나 줘야 하는지 등의 사소한 질문까지 꼬치꼬치 물어보는 바람에 놀란 기억이 있다"고 말했다.

윤여진 한세대 주니어영어캠프 팀장도 "최근에는 아버지들이 워낙 많이 찾아와 설명회 날짜를 일부러 평일이 아닌 토요일로 잡았다"고 설명했다.

이런 '바짓바람' 현상에 대해 베스트셀러 '자녀 성공의 Key는 아버지가 쥐고 있다'의 저자 이해명씨는 "조기 정년,명예 퇴직 등 불안정한 사회 분위기가 아버지의 교육열을 가열시켰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그는 "직장에서의 치열한 경쟁 등에 대한 불안감이 커지면서 신세대 아버지들이 '내 아이는 일찍부터 공부를 잘 시켜서 나보다 더 편안하고 행복하게 살게 해야 한다'는 자각을 갖게 됐다"고 덧붙였다.

가족답사모임인 '아빠와 추억만들기'의 권오진 간사는 "아버지들이 돈만 벌어오고 자녀 교육은 엄마가 전담하던 '아빠 부재 시대'는 끝났다"면서 "아이들의 사회성을 길러주는 데 있어 어머니 혼자가 아닌 부부가 함께 고민한다는 점에서 '바짓바람' 현상은 긍정적인 측면이 강하다"고 말했다.

이태훈 기자/윤미로/이유진 인턴기자 bej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