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해자가 사설탐정 고용 독일서 검거..5일 압송

투자금 600억원을 가로채고 해외로 도피, 호화생활을 하던 사기범이 사설탐정까지 고용해 끈질기게 추적한 한 피해자에 의해 3년여만에 덜미를 잡혀 5일 인천공항을 통해 국내로 압송된다.

사건은 2000년초로 거슬러올라간다.

펀드회사를 설립한 권모(47)씨는 독일의 한 대기업과 합작해 증권사를 설립, 우량주식에 투자하면 안정적으로 수익을 낼 수 있고 매달 투자금의 15%를 배당금으로 지급하겠다며 투자자를 모집하기 시작했다.

권씨는 자신의 부친이 평생 모은 재산의 일부인 50억원 상당의 땅을 2001년 5월 부산 모대학에 기증했다는 내용의 언론보도를 보여주며 투자자들을 안심시켰다.

그는 대학에 50억원을 장학금으로 쾌척할 정도로 재력가 집안의 아들이라는 것을 간접으로 과시하는 수법을 사용한 것이다.

150여명의 투자자들은 권씨의 '감언이설'에 속아 600억원의 투자금을 건넸고 권씨는 한독합작 증권사를 설립하기 이틀 앞둔 2003년 12월 투자금을 챙겨 내연녀와 함께 독일로 달아났다.

부산에서 무역업을 하던 박모(57)씨는 권씨의 사업계획을 믿고 48억5천만원을 투자했다가 고스란히 떼이고 말았다.

권씨가 독일로 갔다는 것을 알게된 박씨는 다른 피해자들과 함께 권씨를 사기혐의로 검찰에 고소했다.

하지만 독일과 한국간에 범죄인 인도조약이 체결되지 않아 공조수사가 불가능해 독일에서 사법당국을 통해 권씨의 행방을 추적할 수가 없었다.

박씨는 독일 한인회 인터넷홈페이지에 권씨의 사진을 올리고 사설탐정을 고용해 권씨가 거주할 만한 곳을 알아보는 등 권씨 찾기를 끝까지 포기하지 않았다.

그러던 중 지난 2월 독일 프랑크푸르트에 사는 한 교민이 자신이 운영하는 레스토랑에 권씨가 나타났다는 제보를 했고 박씨는 곧바로 사설탐정을 보내 권씨를 검거하는 데 성공했다.

권씨가 3년2개월간의 해외도피생활을 마감하는 순간이었다.

권씨는 독일에서 내연녀와 고급 주택과 고가 승용차를 사용하는 등 호화생활을 해왔던 것으로 알려져 피해자들을 더욱 분노하게 만들었다.

박씨는 "경찰과 검찰, 정부가 사기범죄자에 대해 반드시 잡겠다는 의지를 보이지 않았고 특히 얼마 안되는 노후자금까지 잃어버린 노인 등 대부분의 피해자들이 정말 비참하게 생활하는 것을 보고 격분했다"면서 "무역업을 하기 때문에 독일에 자주 갈 수 있었고 현지 교민들에게 사기범을 잡아달라고 호소한 것이 큰 도움이 됐다"고 말했다.

인터폴에 넘겨져 독일에 수감중인 권씨는 5일 인천공항을 통해 입국해 부산지검에서 조사를 받게 될 예정이다.

한편 권씨로부터 돈을 떼인 피해자 100여명은 권씨의 부친이 땅을 기증한 부산 모대학 앞에서 사기범 가족이 기증한 땅으로 장학사업을 하지 말고 피해를 보전해줄 것을 요구하는 침묵시위를 계획하고 있다.

반면 대학측은 권씨 부친이 기증한 땅은 공시지가로 3억원에 불과하며 상수도보호지역에 위치해 땅을 처분할 수도 없어 지금까지 장학사업을 하지 못하고 있다면서 곤란하다는 입장이다.

(부산연합뉴스) 조정호 기자 ccho@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