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혜원 검사 중국동포 편에서 법정싸움해 승소
선고 이틀 전 뇌종양 수술받고 아직 요양 중

뇌종양을 앓으면서도 어려움에 처한 중국동포를 돕기 위해 밤낮 없이 뛴 여검사가 항소심까지 가는 법정싸움 끝에 진실을 밝혀 동포의 눈물을 닦아준 사실이 20일 알려져 진한 감동을 주고 있다.

영화나 TV 드라마에서나 볼 수 있을 법한 이 사연의 주인공은 서울북부지검 형사2부 진혜원(32.여.사시44회) 검사.

작년 초 재판을 전담하는 공판검사였던 진 검사는 물품대금을 떼였다는 중국동포 허모(49)씨가 한국인 사업가 김모(33)씨를 상대로 낸 형사소송 사건의 공판을 맡으면서 허씨의 주장이 진실일 것으로 확신하고 돕기 위해 발벗고 나섰다.

중국 선양에 살던 허씨는 김씨에게 목도리 5천400개(3천500만원어치)를 수출한 뒤 대금을 달라고 했지만 김씨는 "돈을 받아놓고 딴 소리냐"며 오리발을 내밀었다는 게 허씨의 주장이었다.

진 검사는 허씨가 중국에서 증거수집이 어려웠음에도 나름대로 최선을 다했지만 1심 재판부는 지난해 7월 증거부족을 이유로 김씨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판결을 도저히 수용할 수 없다고 판단한 진 검사는 이후 수사 부서로 발령났지만 끝까지 진실을 밝히기로 작심했다.

이후 항소심 재판까지 공판검사역을 맡겠다고 고집했고, 북부지검은 젊은 검사의 열정을 이례적으로 수용했다.

진 검사는 1심 판결의 부당함을 지적하는 50여 쪽의 항소이유서를 2심 재판부에 제출했다.

통상 항소이유서가 20여 쪽 안팎인 점을 감안하면 `3천500만원짜리 소액사건'의 양으로는 엄청난 것이었다.

항소심이 진행되는 동안 진 검사는 낮에는 배당사건을 수사하고 밤에는 늦도록 사무실에 남아 재판을 준비했다.

진 검사는 방대한 양의 통관서류를 뒤져 추가 증거를 찾는 한편 허씨 입장을 뒷받침해 줄 수 있는 중국인을 설득해 법정에 증인으로 세워 김씨의 주장이 거짓임을 입증하는 데 주력했다.

이런 노력 덕분에 항소심 재판부인 서울북부지법 11형사부(이병로 부장판사)는 지난달 26일 검찰 측 주장을 받아들여 김씨에게 징역 8월,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혹시 한국 사법당국이 한국인에게 유리한 판단을 하지 않을까 불안해 했던 허씨는 이달 초 승소 판결 소식을 전해듣고 감격한 나머지 서울북부지검 검사장 앞으로 A4 용지 여섯 장 분량의 감사편지를 보냈다.

허씨는 편지에서 "진 검사님은 제 사건을 마치 본인이 피해를 본 것처럼 열정을 갖고 사건을 파헤쳤다"며 "정의는 살아 있다는 진 검사님의 확고한 신념과 강한 의지는 저뿐 아니라 사건 내막을 아는 많은 사람들을 감동시켰다"고 감격해 했다.

그는 또 "`진실만이 세상과 사람을 움직일 수 있다'는 작은 신념이 제 핏줄의 근원인 한국에서 입증됐다는 게 너무 감사하고 기쁘다"고 소감을 밝혔다.

하지만 진 검사는 아직 편지를 받아 보지 못했다.

지난달 24일 뇌종양 판정 후 큰 수술을 받고 요양 중에 있기 때문이다.

그는 단순한 빈혈인 줄 알고 참고 지내다 수술 며칠 전에야 병원을 찾았다가 머리 속에 큰 혹이 자라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돼 긴급 수술을 받았다.

다행히 수술 경과가 좋아 병원에서 나와 집에서 안정을 취하고 있다.

진 검사의 상관인 형사2부 하윤홍 부장검사는 "검찰 생활을 하면서 진 검사처럼 집념과 열의가 대단한 사람을 못 본 것 같다"며 "진 검사가 하루 빨리 건강한 모습을 찾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서울연합뉴스) 차대운 기자 setuzi@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