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로에(chole)'는 프랑스에서 평범한 여자 아이 이름으로 흔하게 쓰이는 단어다.

성모 마리아를 뜻하는 '마리'나 기독교 성경에 등장하는 선지자 사무엘의 어머니인 '안느'처럼 성스러운 의미를 담은 이름은 아니다.

단지 유순하고 착하다는 뜻을 담고 있을 뿐.우리로 치자면 '순이' 정도 되는 셈이다.

이런 이름은 클로에의 성격을 가장 잘 보여 준다.

다른 명품 브랜드들처럼 장인의 공방에서 기원했다는 식의 거창한 역사도 없고,유명한 디자이너의 이름에서 브랜드명을 따오지도 않았다.

심지어는 수석 디자이너들마저 모두 신진급에서 발탁해 키워 내는 것이 클로에의 전통이다.

1980년대 이후 유명 디자이너 스탤라 맥카트니,피비 필로 등이 클로에를 거치며 '스타'가 돼 나갔다.

지난해 10월 취임한 현재의 수석 디자이너 파울로 앤더슨도 그전까지는 무명의 어시스턴트에 불과했다.

전통 있는 명품도,유명 디자이너의 작품도 아닌 옷들이 한국에서는 특히 폭발적인 인기를 얻고 있는 것.그야말로 '순이'들이 만드는 옷이 어엿한 명품 대접을 받고 있다는 얘기다.

클로에는 2004년 수입의류 멀티숍인 '분더샵'에 입점하며 한국에 진출했다.

클로에의 가장 큰 특징은 '특징이 없다'는 것.

기존 루이뷔통,구치,프라다 등이 그들만의 독특한 스타일과 커다란 브랜드 로고로 '튀는 명품'에 속한다면,클로에는 볼 줄 아는 사람만 명품인 줄 아는 새로운 개념의 브랜드다.

튀지 않으면서 은근히 남들이 명품임을 알아주기 바라는 한국 여성들의 욕구를 충족시키며 1년만에 매달 평균 12억원의 매출을 올리는 메이저 브랜드로 성장했다.

끼리끼리만 향유하고자 하는 서울 강남권 부자들의 새로운 명품 문화가 클로에와 같은 '뉴 럭셔리' 그룹을 신흥 명품으로 밀어올리는 원동력이 되고 있다는 평가다.

분더샵에 입점할 때 만해도 평범한 프랑스 고가 의류 브랜드 쯤으로 알려졌던 클로에는 몇년 새 파죽지세의 인기를 얻어 백화점들의 '러브콜'이 이어졌다.

현재는 갤러리아 동관,현대 본점,무역점,신세계 강남점,롯데 에비뉴엘 등 한국의 주요 명품 거점에 모두 입점했다.

클로에의 인기 비결은 △장식을 간소화해 '시크'하면서도 여성스럽고 △브랜드의 전통을 지키면서도 최신 유행 경향을 발빠르게 반영하며 △해당 브랜드만의 독특한 스타일이 있으면서도 다른 브랜드옷과 섞어 입어도 어색하지 않다는 것이다.

홍민영 갤러리아 명품팀 바이어는 "클로에 고유의 디테일이라고 해봐야 앞섶의 셔링 장식이나 특유의 라운드 칼라(collar) 정도"라며 "하지만 이것이 요즘 강남에서 명품을 좀 아는 사람들끼리만 통하는 '코드'가 됐다"고 말했다.

차기현 기자 khch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