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31일 오전 서울 용산구 남영동 해태제과 지하 2층 타이거즈홀. 200여명의 넥타이 부대가 순간 술렁거렸다. '쭉쭉 빵빵'한 4명의 여성이 걸어나오더니 옷을 훌렁 벗어던지고 묘한 포즈를 취한 것. 누드 크로키 작업을 위해 나온 누드모델들이었다. 이날의 누드 크로키는 크라운ㆍ해태제과가 매주 수요일 오전 개최하는 '모닝 아카데미'의 수강과목 중 하나였다.

크라운ㆍ해태제과가 간부직원들을 대상으로 실시하는 '감성 트레이닝'이 화제다. 강의 주제가 특이하고 참여열기가 뜨거워서다. '모닝 아카데미'는 2004년 12월부터 매주 열리기 시작해 이날까지 총 99회가 열렸다. 7일엔 100회를 기념해 중량급인 이어령 전 문화부장관을 초청,'기업과 창조적 상상력'이란 주제로 강연회를 열기로 했다.

모닝 아카데미는 초청강사의 특강과 음악,미술 등 3교시로 구성돼 있다. 특강 주제는 경제일반 산업 디자인 건강 문화예술 등 다양하다. 특강 뒤에는 질의응답이라는 '심화학습'이 기다리고 있다.

이어 2교시는 음악시간. 서울팝스오케스트라 등을 초청해 연주를 들은 뒤 음악장르,악기,작곡가 등에 대해 공부한다. 일부러 공연장을 찾지 않고서도 수준 높은 음악회를 감상하고,유명 지휘자와 연주자 등으로부터 다양한 음악의 세계에 대해 배운다.

마지막 3교시인 미술시간에는 동양화 서양화 추상화 등에 대해 공부한다. 강의에 나서는 화가가 자신의 작품을 전시한 뒤 작품세계에 대해 설명하는 방식이다. '미니 갤러리'가 열리는 셈이다. 지금까지 60여명의 작가가 모닝아카데미를 찾았다.

재미있는 건 회사측이 출강 작가의 작품을 꼭 사준다는 것. 이 작품들은 크라운ㆍ해태제과의 전국 각 사업장에 전시돼 직원들의 '감성'을 자극하는 촉매역할을 하고 있다. 미술시간엔 색종이 접기나 누드 크로키같은 참여형 수업도 자주 마련된다. '모닝 아카데미'는 참여하지 못하는 직원들을 위해 인터넷으로 전국 200여개 사업장에 생중계된다.

이 회사가 인문과 예술분야 소양을 넓혀주는데 포커스를 맞춘 모닝 아카데미를 정기적으로 개최하는 것은 '식품제과산업은 문화산업'이라는 윤영달 회장의 소신 때문이다. 윤 회장은 "감성이 히트상품의 원동력"이라고 말한다.

모닝 아카데미가 주중행사라면 '토요산행'은 감성 트레이닝의 주말판이다. 이 회사는 매주 토요일 산행 행사를 갖는다. 때론 간부들끼리,때론 사업 부문 임직원들이 산행에 나선다. 종횡으로 뭉치고 있는 것. 하나의 교육프로그램이어서 여기에 참여하지 않으면 예기치 않은 '불이익'을 당할 수 있다. 쉼터에서 주고받는 사내외 정보와 사업으로 곧장 연결될 수 있는 즉석 아이디어를 '물먹을' 수 있기 때문.

등산기록은 인사부에서 보관 중이다. 기종표 기획부장은 지난해 108km의 산행기록을 갖고 있다. 윤 회장은 200km. 토요산행엔 꼭 '약방의 감초'가 있다. '정상시' 낭독과 '유머' 코너다. 정상시는 정상에 오른 뒤 그날의 주인공이 자작시나 유명시를 낭송하는 시간. 유머 코너는 산을 내려온 뒤 뒤풀이 시간에 돌아가면서 유머 한마디씩을 소개하는 것이다. 이건 의무적이다.

이 같은 감성 트레이닝이 결실을 맺고 있다는 게 경영진의 판단이다. 해태제과의 프리미엄 초코 케이크 '生(생)오예스'에 '문화'를 접목시킨 게 대표적이다. '生오예스'에는 국내를 대표하는 유명 미술작가들의 작품을 감상할 수 있는 그림 엽서가 들어있다.

아이디어 창구는 다름아닌 모닝 아카데미. 이 엽서는 어린이들의 미술 교육과 정서 함양에 도움이 돼 일부 학교와 미술학원에서 학습 교재로 사용할 정도라고 한다. 오예스는 하루 5만갑씩 팔리는 등 베스트셀러로 자리를 굳혔다.

남궁 덕 기자 nkdu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