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화의 진전으로 한국에 거주하는 외국인들이 늘고 있으나 외국인에 대한 폐쇄적인 자세는 여전한 것으로 나타났다.

시식코너에서 맛을 보고 가는 외국인을 붙잡아 놓고 "먹었으면 사야지, 왜 그냥 가냐"면서 윽박지르는 경우도 있으며 한국의 사정을 잘 모른다는 이유로 외국인에게 월세를 높게 책정할 뿐 아니라 1∼2년 치를 선불로 내라고 하는 사례도 많다.

외국인들에게는 광고나 설명 내용과는 다른 상품을 내주는 경우도 있으며 고질적인 문제인 바가지 가격은 여전히 해결되지 않고 있다.

외국인들은 병원에 가면 영어 소통이 안돼 의료사고가 나는 것은 아닌지 걱정해야 한다.

유학생, 기업인, 이민자 등은 불법체류 외국인에 비해서는 사정이 나은 편이다.

주로 동남아 저소득국가 출신의 저임 근로자들은 수천만원의 임금체불을 흔하게 겪고 있으며 일하다 팔뚝이 으스러지는 등의 피해를 당해도 보상은 커녕 `불법체류를 신고하지 않겠다' 말에 감지덕지해야 하는 상황이다.

조선족 여성이 중국에 살고 있는 어머니가 위독해 되돌아가려 하는데도 임금을 안주는 사례도 있다.

◇ 외국인의 42% "소비생활 불만족"
90일 이상 국내에 거주하는 외국인은 지난해 현재 53만6천여명으로 2000년에 비해 3.6배로 증가하면서 우리나라 전체 인구에서 차지하는 비중도 1%를 넘었다.

90일 이내의 짧은 기간에 관광.업무차 방문하는 경우까지 감안하면 한국에 들어오는 외국인들은 상당히 많다.

그러나 외국인들에 대한 한국인들의 배려는 부족한 것으로 보인다.

소보원이 내놓은 `국내거주 외국인 소비생활 실태'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에서의 소비생활에 대해 전체 응답자 545명의 41.7%가 '불만족스럽다'고 응답했다.

외국인을 거주목적별로 나눠 소비생활 만족도를 조사했더니 4점 만점을 기준으로 직장인이 2.76점이었고 다음으로 유학.연수생 2.55점, 결혼.이민.이주자 2.47점 등이었다.

국적별로는 일본 출신이 한국의 소비생활에 대해 만족도가 가장 낮았다.

미국.캐나다.

남미 출신이 2.86점으로 가장 높고 이어 유럽.호주.뉴질랜드 2.61점, 아프리카 2.60점, 중국.홍콩.대만 2.55점, 아시아(일본제외) 2.45점, 일본 2.42점 등의 순이었다.

소비생활에 만족하지 못한다는 외국인을 대상으로 그 이유(복수응답)를 물었더니 언어소통 곤란이 35.9%로 가장 많았고 외국인에 대한 배려부족 28.3%, 경제력 부족 22.0%, 정보 부족 19.7%, 국가 문화.제도 차이 16.6% 등이었다.

거주 목적별로 불만족의 가장 큰 이유는 유학.연수생이 배려 부족, 직장인은 언어소통 곤란, 결혼.이민자는 정보부족을 각각 꼽았다.

외국인들이 `배려가 없다'고 느끼는 것은 한국인들이 이들에 대해 폐쇄적이고 적대적 감정을 노출하고 외국인들을 위한 사회시스템을 제대로 갖추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소보원은 설명했다.

◇ 언어소통 안돼 의료사고 가능성
한국에서 물품.서비스를 구입해 이용하는 과정에서 불만족스러웠거나 피해 경험이 있는 사람은 전체응답자의 41.0%에 이르렀다.

불만족.피해 경험자를 대상으로 그 대상품목(복수응답)을 물었더니 ▲휴대전화.이동전화서비스 48.7% ▲의류.신발 26.3% ▲의료서비스 15.0% ▲가전제품 14.5% ▲대중교통서비스 12.7% ▲식품 12.7% ▲신용카드 12.3% ▲인터넷서비스 11.8% ▲부동산중개서비스 9.5% 등 순이었다.

불만족.피해 유형(복수응답)으로는 `외국어 표기.안내 미흡을 비롯한 물품.서비스에 대한 정보부족'이 42.1%로 가장 많았다.

이어 `품질.기능.안정성 문제' 37.0%, 바가지 가격 33.0%였다.

김현주 소보원 책임연구원은 "외국인이라는 이유로 시식코너에서 먹었으면 사야한다고 윽박지르는 경우도 있으며 외국인이라는 이유로 월세를 1∼2년치 미리 받는 경우도 많는 것으로 파악됐다"고 말했다.

외국인들은 또 휴대폰을 구입할 때 친구의 명의를 빌리거나 예치금을 넣어야 하는 경우가 있다고 지적했다.

신용카드 발급시 예금을 담보로 요구받거나 해외에서 발급받은 카드가 영화예매 등 인터넷 예약에 사용될 수 없는 경우도 있다고 외국인들은 전했다.

의료서비스의 경우 언어소통이 원활하지 못해 의료사고로 이어질 수있으며 치료전에 진료비정보를 제공받지 못하는 경우가 있다고 외국인들은 지적했다.

인터넷쇼핑몰을 비롯한 인터넷서비스를 이용할 때 주민등록번호 대신에 외국인등록번호를 사용할 수 없는 경우도 있다는 응답도 나왔다.

한편 전체 조사대상자들에게 한국어 구사능력을 물었더니 ▲매우 능통함 15.3% ▲의사소통 불편없는 정도 37.5% ▲의사소통 원활치 못함 35.1% ▲전혀못함 12.1% 등이었다.

한국에 거주하는 외국인의 절반가량이 언어소통에 문제가 있는 셈이다.

외국인들은 은행서비스, 의료서비스, 공공기관, 택시기사 등의 영어 구사능력이 향상됐으면 한다고 밝혔다.

외국인들은 피해를 당해도 피해구제를 대체로 포기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불만.피해를 경험한 사람 가운데 `그냥 포기'한 경우는 55.4%로 가장 많았고 사업자나 판매자에게 해결 요구 33.3%, 소비자보호 기관.단체에 신고.호소 6.8%, 외국인지원단체나 행정관청 등에 신고.호소 4.5%였다.

불만.피해에 대응하지 않는 이유로는 `어디에 상담.호소.신고할지 몰라서'가 41.5%, `상담해도 해결될 것같지 않아서' 26.0%, `언어가 통하지 않아서' 22.8% 등이었다.

◇ 외국인노동자 고통 심하다
국내에 체류하는 외국인 근로자들은 불만족.피해수준을 뛰어넘어 상상하기 힘든 고통을 당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이들은 ▲밤낮으로 일했는데도 임금을 못받는 경우가 적지 않고 ▲일을 하다 신체를 다쳤는데도 보상을 받지 못하는 사례가 많다.

이들은 한국을 극도로 증오.불신하게 되고 이는 한국에 대한 국제적 이미지 추락으로 이어진다.

경남외국인노동자상담소에 따르면 중국 여성교포 C씨는 최근 상담소를 방문해 "엄마가 죽는데 회사측이 돈을 주지 않아 집에 가지 못한다"고 울먹였다.

C씨는 창녕의 한 소기업에서 남성 근로자들과 함께 13시간의 근무를 감당했다.

정해진 식사시간도 없었을 정도로 일을 했다.

그러나 첫월급 이후에는 월급을 받지 못했다.

병원에 입원해 있는 어머니가 위독하다는 소식을 전해들은 C씨는 출국을 위해 다시 회사측에 임금지불을 요청했으나 한달후에 오라는 말만 반복해 들어야 했다.

인천시 천주교 외국인노동자상담소 정현숙 상담원은 "얼마전에는 방글라데시에서 들어온 30대 중반 부부가 작년 4월부터 연말까지 3천만원의 임금을 받지 못한 사례가 있었다"고 전했다.

정 상담원은 "저소득국가 출신 근로자들은 불법체류인 경우가 많다는 점을 이용해 사업주들이 임금을 지불하지 않고 폭행하거나 모욕을 주는 사례가 종종 있다"며 "손가락이 절단되고 팔뚝이 으스러지는 등의 사고가 발생해도 회사측에 당당하게 보상을 요구하지 못한다"고 말했다.

정 상담원은 "한국 국민들이 단일 민족이어서인지는 몰라도 외국인들에 대해 폐쇄적인 측면이 있는 것같다"고 덧붙였다.

(서울연합뉴스) 윤근영 박대한 기자 keunyoung@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