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승 15명,판서 35명,대제학 6명,왕비 3명을 배출한 안동김씨.왕의 총애를 업고 절대 권력을 휘두르며 천하를 주무른 조선 정치의 실세.'조선은 김씨의 나라지 이씨의 나라가 아니다'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세도정치의 막강한 집단이었고,23대 순조비 순원왕후부터 25대 철종비 철인왕후까지 세 명의 왕후를 연이어 배출한 명문가.

이들의 저력은 어디에서 나왔을까.

'조선 명가 안동 김씨'(김병기 지음,김영사)는 조선 역사의 또다른 측면을 한 명문가의 흥망성쇠로 살펴본 문중사학 대중서다.

대한독립운동총사편찬위원장인 저자는 이 책에서 "안동김씨의 이름은 우리 역사의 어둠이자 빛"이라며 그 가문의 역사에 돋보기를 들이댄다.

안동김씨는 조선왕조 사상 가장 많은 문과 급제자를 배출한 집안이자 나라에 위기가 닥칠 때마다 목숨을 바친 충절과 절의의 본가.

그런데 안동김씨는 구안동김씨와 신안동김씨로 나눠져 있다.

구안동김씨의 시조는 신라 경순왕의 손자 김숙승이며 고려 때 일본정벌에서 전과를 올린 김방경,조선 때 진주성의 명장 김시민 등 무반 가문으로 세력을 떨쳤다.

신안동김씨의 시조는 고려태조의 삼태사 중 한 사람인 김선평이고 조선 정조 이후 세도정치로 급부상한 가문이다.

본관과 성씨는 같지만 사실상 별개의 성인 것이다.

저자는 이처럼 '하나의 성씨 두 개의 가문'으로 구성된 안동김씨의 내력,급변하는 당쟁의 소용돌이에 휘말려 멸문의 화를 입기도 하면서 위풍당당한 세도가로 명성을 떨치게 되는 과정 등을 다큐멘터리처럼 펼쳐보인다.

안동김씨가 서울에 터전을 잡으면서 명문세가들과 관계를 맺기 시작하는 초기 일화,김번의 아들 생해가 성종의 아들인 경명군 이침의 사위가 됨으로써 위상이 높아지고 병자호란 당시 청과의 정면대결을 외치며 굴욕적인 국서를 찢고 청에 끌려가 옥고를 치른 김상헌 이후 최고 가문의 반열에 오르는 여정이 흥미롭다.

갑신정변의 주역인 개화파 지식인 김옥균,구한 말 조선총독부로부터 남작 작위를 받았으나 이를 버리고 독립운동에 뛰어든 김가진,청산리대첩의 김좌진 등 근세사의 인물까지 다뤘다.

저자는 "우리나라에 특출한 문중이 많지만 의외로 문중사에 대한 연구는 거의 없었는데 이는 가문의 영광에만 집착해 문중 인물에 대한 비판이 금기시됐기 때문"이라며 "이 책을 통해 문중사학이 우리 역사의 한 장르로 자리매김하길 바란다"고 밝혔다.

236쪽,9900원.

고두현 기자 kd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