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이야기 등 슬롯머신 '천재 수학자도 속수무책'
카드게임 일부는 패턴 파악可..'싹쓸이' 전례


"도박은 머리를 쓰는 과학이라더니만.."

전국을 휩쓴 '바다이야기' 파문에 서민들의 한숨소리가 높다.

'잘만 하면 돈 좀 벌겠다'는 생각에 사행성 게임에 손을 댔다가 가산을 탕진한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렇다면 속칭 '두뇌싸움'이라고 불리는 도박에서 과학적으로 돈을 잘 따는 방법은 있을까.

결론부터 얘기하면 아인슈타인 같은 천재도 바다이야기 같은 슬롯머신 노름 앞에서는 결국 '쪽박'을 찰 수 밖에 없다.

돈을 따는 '승률'을 기계를 운영하는 업소가 다 정해놓기 때문. 버튼을 누르면 바삐 돌아가다 멈추는 화면의 '휠(Wheel)'은 게임의 재미를 위해 내건 '허울'이며 모든 결과는 기계 내의 소프트웨어가 결정한다.

사람의 두뇌가 개입할 여지가 전혀 없는 것이다.

연세대 수학과의 이승철 교수는 "프로그램 상 '버그'로 승률이 높아진 기계를 찾아다니며 확률론을 이용, 베팅 전략을 짜는 방법이 있긴 하지만 현실에서 안 통하는 경우가 흔하다"며 "게임장에 들어서면 돈을 벌 생각은 아예 안 하는 게 오히려 가장 과학적인 판단"이라고 말했다.

업소들이 가짜 손님을 고용해 '대박' 기계가 많은 것처럼 사람들을 속이는 실제 상황에서 승률이 높은 기기를 계속 찾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말이다.

게다가 바다이야기와 같이 상품권을 쓰는 도박은 백전백승을 해도 돈을 잃게 된다.

게임을 하면 계속 상품권을 현금으로 바꿔야 하는데 이 때 액면가의 10%를 걷어가는 수수료가 함정.
즉 연일 돈을 따는 고수라도 10%씩 수수료를 계속 떼이다 보면 결국 빈털터리 신세로 전락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과학자가 도박에 강해?"

과학적 지식으로 대박을 낼 수 있는 도박도 있다.

대표적인 예가 트럼프 카드를 받아 해당 패의 숫자 합이 21에 가까운 이가 승리하는 게임인 '블랙잭'.

미국 로스앤젤레스 캘리포니아대(UCLA)대 출신 수학자인 에드워드 솔프는 1960년 미국 수학회 정기 총회에서 카드 패의 흐름을 기억하는 '카운팅(Counting)' 기법으로 블랙잭 게임에서 이길 수 있다는 '행운의 공식: 블랙잭의 필승전략'을 발표해 관심을 끌었다.

솔프는 당시 재력가들로부터 1만 달러를 받은 뒤 30시간 만에 라스베이거스 카지노에서 이 돈을 2만1천달러로 불려 자신의 이론을 손수 증명하기도 했다.

증권 투자가 과학적 해법이 존재하는 '도박'이란 해석도 있다.

세계 증시의 심장 월스트리트는 현재 1천여 명의 수학자를 고용, 확률과 통계이론을 총동원해 투자 전략을 짜낸다.

예컨대 '블랙 숄즈 공식'이란 법칙은 선물(Future) 시장에서 상품의 구매가, 현시가, 구매시점까지의 기간, 이자율, 시장 유동성 5가지 값을 넣어 최적의 투자 가격을 산출한다.

블랙잭 이론을 만든 솔프 역시 어바인캘리포니아대 교수 등을 지내다 결국 해지펀드 매니저로 '변신'했다.

그러나 과학적 비법을 맹신해선 안된다.

블랙잭은 아무리 냉정하게 카드 패를 읽어도 딜러와의 심리전에 밀려 게임을 그르칠 가능성이 적지않다.

투자 오판으로 거금을 날리는 경우가 속출하는 증권가에서도 완벽한 '게임의 법칙'은 없다고 보는 게 맞다.

트럼프 3장으로 치는 바카라와 회전원반에 주사위를 던지는 룰렛은 과학적 비결은 커녕 '필승전략' 자체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점이 학자들에 의해 증명된 경우다.

"노름이 확률론의 어머니"

과학과 도박의 인연은 각별하다.

수학의 확률론은 과학자들이 노름판의 의문점을 풀어보면서 틀이 잡혔다.

17세기의 유명 수학자 파스칼에게 도박사 친구가 판돈을 나누는 문제를 물어본 것이 출발점이다.

이 질문은 두 도박꾼이 3점을 얻으면 판돈을 독차지하는 내기를 시작해 둘이 각각 2점과 1점을 낸 뒤 게임을 중단하면 돈을 어떻게 나눠야 하냐는 내용.
파스칼은 두 노름꾼이 이기고 지는 확률을 확인해 돈을 나눠야 한다고 보고 계산법을 동료 수학자 페르마와 논의했다.

'이항정리'와 '파스칼의 삼각형' 등의 수학 기법이 동원된 풀이법은 이후 확률론 연구의 주요 초석이 됐다.

노름에 빠져 도박을 연구한 과학자도 있다.

이탈리아 태생으로 1520년 '도박 게임에 관한 책(The Book on Games of Chance)'을 펴낸 수학자 겸 의사 카다노(Cardano)가 그 주인공.
파스칼 이전 도박을 통해 확률 원리를 살펴본 이 책에서 카다노는 "도박은 적당히 즐겨야 한다"고 썼지만 정작 스스로가 못 말리는 노름꾼이었다.

어려서 도박에 손을 댄 이후 40년 동안 하루도 쉬지 않고 노름을 했다고 스스로 고백할 정도였다.

컴퓨터 프로그래밍 이론의 개척자인 영국의 여류 과학자 에이다 오거스타 킹도 노름과의 '악연'으로 유명하다.

19세기 중반 PC의 할아버지 뻘인 '해석기관'을 연구해 현대 프로그래밍의 기본 원리인 'IF(만일)' 구문을 고안한 킹은 결혼 이후 극심한 도박 중독에 시달렸다.

대문호 바이런의 친딸로 당대 최고의 천재란 찬사를 들었지만 도박에 대한 욕구만은 도저히 통제할 수 없었던 것. 남편 집안의 패물까지 빼돌려 노름 자금을 마련하던 그녀는 경제난에 허덕이다 36세에 요절했다.

(서울연합뉴스) 김태균 기자 tae@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