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신비밀ㆍ언론자유 충돌 판단 `첫 판결'
`유연한' 법 적용으로 법적 안정성ㆍ정의실현 추구


법원이 도청자료를 입수해 보도한 이상호 MBC 기자에게 무죄를 선고한 판결은 헌법상 기본권인 `통신의 비밀'과 `언론의 자유'가 충돌할 때 위법성 조각(阻却ㆍ성립되지 않음)을 인정한 첫 판결이라는 점에서 큰 의미를 갖는다.

재판부는 헌법상 기본권인 통신의 비밀과 언론의 자유가 충돌할 경우 어느 정도 수준에서 조화를 이룰 수 있을 것인지를 모색해 공적인 관심사에 대한 보도의 필요성과 사안의 중대성이 인정된다면 형법상 일반적인 위법성 조각 사유를 근거로 정당행위라고 볼 수 있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이상호 기자의 보도행위는 현행 통신비밀보호법 16조에서 규정한 `불법하게 지득된 통신비밀을 공개, 누설하는 행위'에 해당돼 법에 어긋난 행위라며 처벌 입장을 밝힌 검찰 주장에 대해 "통신의 비밀이 헌법에 보장된 기본권이지만 법률에 의해 제한이 가능하다"는 논리를 폈다.

즉 현행 통비법에 위법성 조각 사유가 규정돼 있지 않기 때문에 공익적인 목적의 언론보도를 포함한 어떤 행위도 예외성이 인정되지 않는다면 통신의 비밀은 어떤 경우도 제한이 불가능한 기본권이 되기 때문에 헌법상 `기본권 제한의 법리'에 모순된다는 것이다.

재판부는 "통신의 비밀을 침해하는 것이기는 하되 언론의 기능상 보도가 불가피할 경우 `기본권의 규범 조화적 보장'을 도모하려는 헌법의 기본 원리에 반하는 부당한 결과가 초래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결국 재판부는 비록 현행 통비법에는 위법성 조각사유가 없다는 문제점이 있지만 `법령에 의한 행위 또는 업무로 인한 행위 기타 사회상규에 위배되지 않는 행위'라는 형법상의 정당행위 조항과 `인격권 침해가 공적인 관심사에 대해 중대한 공익상 필요에 의해 부득이하게 이뤄진 때에는 위법성이 조각된다'고 규정한 언론중재 및 피해구제에 관한 법률 등을 원용해 `유연한' 법 적용을 한 셈이다.

따라서 비록 불법적 요소가 개입되기는 했지만 목적과 수단에 있어서 상당한 이유가 있다고 판단되는 경우 정당행위로 인정할 수 있다고 판결함에 따라 `법적 안정성의 추구'와 `정의의 실현'이라는 형법의 양대 기본 철학에도 충실한 판결을 내렸다고 풀이할 수 있다.

김득환 부장판사는 11일 "이번 판결은 언론기관의 보도 행위가 정당한 행위로서 위법성이 조각될 수 있는지 여부와 위법성 조각을 긍정할 경우 그 내용과 적용의 한계가 무엇인지를 구체적으로 밝힌 최초의 사례라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서울연합뉴스) 임주영 기자 zoo@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