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성 또는 여성이 수술 등을 통해 반대 성으로 바꾼 성전환자의 호적상 성별 정정을 허가하는 대법원의 결정이 사법사상 처음으로 나왔다.

이번 결정으로 약 3만명까지 추산되는 국내 성전환증자의 성별정정 청구가 잇따를 것으로 예상된다.

대법원 전원합의체(주심 김지형 대법관)는 22일 성전환 수술을 한 50대 여성 A씨가 호적상 성을 `남성'으로 바꿔달라며 낸 개명ㆍ호적정정신청 재항고 사건과 관련, 성별 정정을 불허한 원심을 파기하고 사건을 청주지법으로 돌려보냈다.

대법원은 1993년 1월 성전환자의 성별을 묻는 예비군 중대장의 질의에 `호적상 성별정정 불가'라는 회신을 했고 1996년 6월에는 성전환자를 성폭행한 피고인들에게 강간치상죄가 아닌 강제추행죄를 적용하는 등 성별 정정을 인정하지 않았었다.

재판부는 결정문에서 "성별 정정 절차를 다루는 법이 따로 마련돼 있지 않지만 성전환 수술을 받아 본래의 성이 아닌 반대 성의 외관을 갖추고 있고 개인ㆍ사회적 영역에서 바뀐 성으로 인식되는 사람이라는 것이 명백하다면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 행복추구, 인간다운 생활을 할 권리가 있으며 이것이 공공복리나 질서에 반하지 않다면 전환된 성을 인정해 줌이 상당하다"고 밝혔다.

특히 반대의 성에 대한 귀속감을 느끼며 반대의 성으로 행동하고 성전환증 진단을 받고 정신과 치료를 받아도 증세가 호전되지 않으며 성전환 수술을 받은 뒤 바뀐 성에 따라 활동하며 주위 사람들도 바뀐 성을 허용하고 있다면 사회통념상 성전환이 이뤄진 것으로 봐야 한다는 기준을 제시했다.

재판부는 또 "성전환자에게 호적상 성별란의 기재사항을 바꿔줘도 기존의 신분관계 및 권리ㆍ의무에는 영향을 미치지 않으며 사회통념상 이름이 성별 구분의 기초가 되는 경우가 많으므로 성전환자에 대한 호적정정을 허가하는 경우에는 개명 역시 허가할 수 있다"고 판시했다.

손지열ㆍ박재윤 대법관은 반대의견에서 "성 변경은 기존의 헌법과 법률이 고려하지 않은 새로운 문제이기 때문에 일반 국민의 의견 수렴, 신중한 토론과 심사숙고과정을 거쳐 국회가 입법적 결단을 통하여 결정해야 한다"는 입장을 내놨다.

손ㆍ박 대법관은 또 "성 변경 요건ㆍ절차ㆍ효과를 정하는 입법이 이루어지지 않은 상태에서 법원이 성전환 수술을 받은 사람의 호적정정 허가 신청을 선별적으로 인용한다면 법적 안정성을 크게 해치게 된다"고 덧붙였다.

주심을 맡은 김지형 대법관은 보충의견에서 "가시적인 입법조치를 예상하기 힘든 현 시점에서 법원이 성전환자로 확인된 사람의 성별 정정을 허용하는 사법적 구체수단의 길을 터놓은 것은 미흡하나마 성전환자의 고통을 덜어줄 수 있는 최선의 선택이다"고 의미를 부여했다.

(서울연합뉴스) 심규석 기자 ks@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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