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래 청소 식사준비를 남편이 같이 해주지 않는다면 저 혼자 애 둘을 어떻게 키우겠어요.

집안 일을 어떻게 나눌지를 얘기한 적은 없지만 남편이 알아서 잘 해주고 있어요."

상도동에 사는 안신경씨(32)는 일곱 살,네 살 난 두 딸을 키우면서도 직장(서울시청) 생활을 충실히 할 수 있는 비결을 남편 덕으로 돌렸다.

남편이 지방출장을 가면 몰라도 저녁에 아이들을 유치원에서 데려오는 일도 남편이 챙겨준다.

그러나 안씨의 친구인 박 모씨(상암동)는 지난해 초 첫째를 낳고 다니던 회사를 그만뒀다. 이유는 '힘들어서'였다. 육아휴직을 꺼려하는 회사 분위기도 그랬지만 집안 일에 무심한 남편을 챙겨가며 아이를 기를 엄두가 나지 않아서였다. 5년의 경력을 포기하기 아까웠지만 어쩔 수 없는 결정이었다.

○맞벌이 엄마는 슈퍼우먼?

서울시가 연초 기혼남녀 796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맞벌이 여성 10명 가운데 7명은 가사도우미 없이 집안 일을 꾸려가고 있었다. 그렇다면 남편들이 집안일을 도와주고 있을까.

퇴근 후 시간활용 상황을 보면 여성의 경우 절반(50.4%)이 '가사와 육아'로 시간을 보낸다고 답했다. 반면 남편들은 10.3%만 이를 돕는 것으로 조사됐다. 특히 맞벌이 남편 중 12%는 퇴근 후 '전혀' 가사노동에 참여하지 않는다고 답했다. 그나마 이것도 남편들의 생각이다.

여성들은 42%의 남성이 가사에 전혀 보탬을 주지 않는다고 답했다. 같이 생계를 책임지고 있지만 가사부담은 여전히 여성의 몫이다.

○남편이 도와야 출산율 올라간다

이런 가사분담 구조가 출산율에는 어떤 영향을 끼칠까.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이 지난해 전국 남녀 6472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서 무자녀 기혼여성들에게 왜 아이를 낳지 않느냐고 물었다.

불임(69.7%) 다음으로 가장 많았던 응답이 '부부역할 분담의 불공평성'(10.9%)이었다.

직장 생활에 가사까지 전담해야 하는 상황에서 아이까지 낳는다는 게 도무지 엄두가 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한 자녀를 둔 여성에게 둘째 아이를 왜 낳지 않느냐고 물었다.

△경제적 문제(40%) △불임(14.2%) △건강(12.4%) 등에 이어 역시 부부역할의 불공평성(4.7%)이 주요 원인으로 제시됐다.

출산을 늦춘다는 여성들의 경우도 △자녀 양육·교육비 부담(43.9%) △소득·고용 불안정(25.4%) 다음으로 일-가사의 양립곤란(2.5%)을 이유로 들었다.

출산·보육에 필요한 사회적 인프라를 정부·기업이 나서 만들어주더라도 남편들이 가사를 분담해주지 않는 한 출산율을 올리기란 사실상 어렵다는 얘기다.

○남편을 가정에 돌려줘야

그렇다면 남편들은 왜 바쁜 아내를 돕지 않는 걸까. 서울시의 설문조사 결과 '집에 있는 시간이 적어서'라는 답이 32.3%로 가장 많았다.

이삼식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저출산정책연구팀장은 "남성들의 가사 분담을 확대하기 위해서는 양성평등에 대한 인식부터 확산돼야겠지만 기본적으로 남성들이 집안에 머무를 수 있는 시간이 늘어나야 한다"고 답했다. 퇴근 시간을 늦추는 회식 야근 등의 일자리 문화를 획기적으로 바꿔야만 남편들이 가정에서 시간을 갖고 가사를 분담할 수 있게 된다는 지적이다. 한국노동조합총연맹 김종각 정책본부장은 "육아를 포함한 '돌봄 노동'은 가족의 모든 구성원이 분담해야 한다"며 "특히 아버지의 역할 분담이 중요한 만큼 남녀 노동자를 불문하고 근로시간 단축제도 등을 활용할 수 있도록 정책적 배려가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박수진 기자 notwoma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