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이 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에 대해 실형을 선고한 것은 김 전 회장이 대우그룹을 이끌면서 경제 성장에 기여한 공로보다는 '대우 사태'를 초래,국민경제에 끼친 피해가 더 크다고 판단한 데 따른 것으로 풀이된다.

김 전 회장이 작년 8월부터 약 10개월간 진행된 재판에서 당국의 미숙한 대응이 외환위기를 불렀다며 대우그룹의 '정치적 사망설'을 제기하는 등 책임을 회피하는 듯한 태도를 보인 것도 중형 선고에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이번 판결에는 지난해 이용훈 대법원장이 취임한 이후 사회지도층의 경제범죄 등 이른바 '화이트칼라 범죄'를 엄단하겠다는 원칙도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대우 해체 책임 물어

재판부는 검찰이 김 전 회장을 기소하면서 적용한 대부분의 혐의를 유죄로 인정했다.

20조원대의 분식회계와 9조8000억원의 사기대출을 지시하고 32억달러의 재산을 해외로 빼돌린 혐의가 모두 유죄로 인정됐다.

또 대우의 정식 재무제표에는 반영하지 않은 채 영국 런던의 금융조직 BFC를 통해 회사자금 1억달러를 힐튼호텔에 투자하고 홍콩 소재의 KMC 계좌로 송금한 것에도 횡령죄가 적용됐다.

김 전 회장측은 그간 이 같은 행위가 외환위기 당시 자금 경색을 피하고 회사를 살리기 위한 불가피한 조치였다고 항변했다.

재판부는 그러나 "피고인은 합리적인 구조조정과 내실 위주의 경영으로 문제점을 근본적으로 시정하기보다 분식회계 등을 통해 기업의 자산상태를 속였다"며 "이는 결국 IMF 구제금융체제와 맞물려 대우그룹 도산이라는 사태를 초래했다"고 밝혔다.

◆추징금 21조원 적절성 논란

'추징금 21조원'의 적절성 여부를 지적하는 목소리도 적지 않았다.

대우사태로 투입된 공적자금은 대우건설 대우인터내셔널 등 옛 대우계열사들이 대부분 우량기업으로 탈바꿈함에 따라 대거 회수할 수 있게 됐다.

재판부 역시 "자산관리공사가 부실채권을 인수하면서 12조6000억원을 투입했는데 17조9000억원의 회수가 기대되고 예금보험공사와 정부가 금융기관 지원에 투입한 금액 16조6000억원과 5000억원도 우량기업의 경영권 프리미엄을 감안할 경우 상당한 액수의 회수가 기대된다"고 밝히고 있을 정도다.

하지만 이 같은 점을 추징금 규모나 양형에 반영하는 데 인색했다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재판 직후 김 회장 변호인단은 "대우 재판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며 즉각 항소의사를 밝혔다.

형량이 너무 가혹한 이유도 있지만 출국비밀 등 검찰이 밝혀내지 못한 의혹들도 적지 않기 때문이다.

유승호 기자 ush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