톈진 아로마골프장 강은영 과장 "낮엔 캐디 밤엔 학생으로 중국 익혔죠"

"핀은 그린 앞쪽에 있습니다."

"남은 거리는 150야드입니다."

중국 북부 톈진시 외곽에 위치한 아로마골프장.

톈진의 9개 골프장 가운데 유일하게 한국인이 투자한 곳이다.

중국인 캐디 90여명이 한국말을 또박 또박 합창을 하듯 따라한다.

강단에 선 사람은 아로마골프장의 강은영 경기부 과장(28).

그는 한국에서 캐디를 했다.

지금은 중국 캐디들의 '대장'이다.

골프장에서 치러지는 모든 시합을 준비하고 사전 홍보하는 일과 광고 및 기획 업무도 그의 일이다.

그렇게 바쁜 데도 7월부터는 일주일에 이틀을 쪼개 톈진 난카이대학 MBA과정을 밟는다.

회사측이 비용을 전액 부담한다.

지난해 5월 정식 직원으로 취업한 새내기지만 촉망받는 직원인 셈이다.

강 과장의 중국 취업 스토리가 궁금해지는 이유다.

"운이 좋았습니다.

하지만 중국 전문가가 되겠다는 꿈을 한시도 놓지 않고 어학에 매달린 게 도움이 됐지요."

강 과장은 "어렸을 때부터 무협지 영화 음악 심지어 연예인도 중국이라면 사족을 못썼다"고 말했다.

그러나 충북의 한 전문대 중국어과를 나온 뒤 그의 첫 직장은 중국과는 거리가 있었다.

졸업 당시 박세리의 LPGA 우승으로 골프붐이 일었을 때 캐디였던 친구의 권유로 청주 인근TGV 골프장 캐디로 취업했다.

하지만 캐디 3년차에 중국어에 미련(?)을 못 버리고 등하교 시간만 3시간 걸리는 충주대학교 중문과 야간 3학년에 편입하게 된다.

"하루 잠자는 시간은 2~3시간 정도였습니다.

새벽 4시부터는 캐디로,오후 3시부터는 학생으로 생활 했지요."

우연히 찾아온 중국 취업의 기회를 낚아챌 수 있었던 실력이 여기에서 길러진 것이다.

4학년 마지막 학기 중국 취업의 첫 번째 기회는 정말 우연히 찾아왔다.

신문광고지에서 산업인력공단의 해외 인턴사원모집 광고를 본 것.

주위에선 말렸다.

월 300만원 안팎의 급여를 받는 직장이 있는데 인턴사원은 6개월만 보장되고 월급도 20만원밖에 안됐기 때문이다.

하지만 강 과장의 중국통을 향한 꿈을 꺾지 못했다.

탄탄한 어학실력으로 공단측의 면접과 구술시험을 통과했다.

두 번째 기회는 톈진의 호텔에서 치러진 면접장에서 왔다.

처음 면접을 본 업체가 아로마골프장이었다.

4년7개월의 캐디경력과 어학실력을 인정받아 2004년 말 인턴사원으로 채용됐다.

"주경야독할 만큼 중국에 대한 집념이 마음에 들었고 인사도 깍듯이 하는 등 첫 인상이 좋았습니다."

아로마골프장의 한삼수 회장은 "강 과장이 중국 손님들도 놀랄 정도의 어학실력을 갖추고 있다"며 '준비된 직원'이라고 강조했다.

중국 협력업체들과의 회의도 강 과장이 통역까지 하면서 주재한다고 한다.

한 회장은 "골프장 개장 전인 지난해 현장을 한 번 둘러 보라고 했는데 발목까지 진흙을 가득 묻힌 채 싫은 기색하나 없이 돌아 오는 것을 보고 의지가 참 강한 친구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회고하며 "다른 나라에도 내보내 인재로 키우고 싶다"고 말했다.

아로마골프장은 300여명의 회원 중 70%가 한국인일 정도로 한국인이 많이 찾는다.

한국인 단체관광객도 온다.

신생 골프장이라 캐디 교육도 시급한 상황이었다.

한국에서 골프예절을 몸에 익힌 강 과장이 인턴기간이 끝난 작년 5월 정식직원으로 채용된 이유다.

그는 매일 전날의 매출현황,고객의 의견 등을 분석,보고하고 캐디들에게는 서비스 및 한국어를 2시간에 걸쳐 교육한다.

"아래 직원들에게까지 고개를 숙이면서 인사하면 처음에는 사람들이 이상하게 생각했는데 지금은 골프장 직원들 모두가 저를 따라 목례하는 게 습관처럼 됐습니다."

현재 급여수준은 월 300만원 정도를 받았던 한국 캐디시절에 약간 못 미치지만 비전이 있는 곳이라는 생각에 전혀 개의치 않는다는 그의 말에서 미래를 꿈꾸는 20대의 당당함이 느껴진다.

최근엔 골프장측에 가족단위의 레저 상품을 기획해 올렸다.

골프뿐 아니라 가족농장,승마,서바이벌게임,수상보트 등을 패키지로 묶는 것으로 골프장측도 이를 적극 검토 중이다.

미혼인 그는 "아직은 편한 솔로가 좋다"면서 "중국에 온 것만으로도 내 꿈의 절반은 이뤘다"며 활짝 웃었다.

톈진=오광진 특파원 kjoh@hankyung.com

ⓒ 한경닷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