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사상 처음으로 지상파방송사간의 스포츠 중계권을 둘러싼 법정 다툼이 일단락됐지만 불씨는 여전히 꺼지지 않았다. 한국이 야구 선진국을 잇따라 누르고 4강에 오르면서 국민은 한마음이 됐으나 방송 3사의 갈등의 골은 깊게 팬 것. 서울 남부지방법원은 17일 KBS가 MBC와 SBS를 상대로 신청한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준결승전 방송금지 가처분신청을 기각했으나 KBS는 아직 MBC와 SBS에 중계권 재판매를 결정하지 않았다. KBS는 18일 MBC, SBS와 만나 이 문제를 협의할 예정으로 KBS가 WBC 준결승전 한국과 일본의 경기가 치러지는 19일 정오 전까지 MBC와 SBS에 중계권을 재판매하면 적어도 이번 다툼은 해결된다. 하지만 KBS가 끝까지 판매하지 않았는데 MBC와 SBS가 방송할 경우 WBC 조직위원회로부터 국제법적 소송을 당할 가능성도 있다. 또 이번 사건을 계기로 방송 3사가 스포츠 중계권에 대한 '신사협정'을 깨고 치열한 경쟁을 벌일 경우 중계권료가 올라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으며 그럴 경우 국부 유출에 대한 비판도 피하기 어려울 것으로 전망된다. ◇법원이 가처분신청을 기각한 까닭 IB스포츠로부터 WBC 지상파TV 중계권을 확보한 KBS는 준결승과 결승전을 독점 중계키로 했으며 이에 반발해 방송을 강행하려는 MBC와 SBS를 상대로 방송금지 가처분신청을 제기했다. 법원은 KBS가 WBC 경기의 지상파TV 방영에 대한 독점적 권리를 보유하고 있다는 사실은 인정했다. 그러나 법원은 방송 3사가 1, 2라운드에서 한국팀이 치르게 되는 6경기를 각각 2경기씩 독점 중계하기로 합의했으나 미처 한국이 4강에 진출할 것을 예상치 못한 채 준결승전과 결승전 경기 중계에 관해 추후 협의하기로 한 점을 주목했다. 또 17일 방송협회에서 준결승전 중계와 관련된 회의가 열렸으나 KBS가 참석하지 않은 사실과 국제대회의 중계권 확보 경쟁이 과열되는 것을 막기 위해 방송 3사가 서로 협의해 문제를 결정했는데 협의가 이뤄지지 않는 경우 방송 3사는 각각 경기를 중계하기로 한 사실에 무게를 뒀다. 실제로 방송 3사는 축구 국가대표 A매치 중계를 순번을 정해 독점적으로 방송해왔으나 설(1월29일)에 열린 크로아티아전은 협의가 이뤄지지 않아 3사 모두 방송했다. 또한 지난달 22일 시리아전의 경우 IB스포츠가 지상파에 중계권을 팔지 않아 순번이었던 SBS가 방송을 못했다. 이에 따라 독일 월드컵 이전까지 A매치가 5경기 남아 방송 3사는 이달 1일 열린 앙골라전과 마지막 경기인 가나전을 동시 중계하고 나머지는 순서대로 독점 중계키로 합의했으며 WBC 중계도 순서대로 방송키로 했다. ◇방송 3사, 합의 이뤄낼까 방송 3사는 월드컵 중계권의 경우 '코리아풀'을 구성해 공조체계를 갖춰왔고 특히 지난해 IB스포츠가 미국 메이저리그(MLB)와 아시아축구연맹(AFC), 국내 프로농구 등의 중계권을 독점하자 똘똘 뭉쳐 대응해왔다. 그러나 KBS가 지난달 IB스포츠로부터 MLB와 AFC, WBC, 국내 프로농구 등에 대한 지상파 중계권을 구입하면서 이미 공동전선에 금이 가기 시작했다. 방송 3사는 지난해 8월 신사협정을 체결하고 IB스포츠로부터 중계권을 구매하지 않기로 합의했으나 KBS의 중계권 구입으로 협정이 깨진 것. KBS는 17일 법원의 결정에 따라 대책회의를 가졌으나 뚜렷한 입장을 정하지 못하고 19일 MBC, SBS와 만나 협의키로 했다. KBS 이민동 홍보팀장은 "KBS가 무조건 준결승전을 독점 중계할 뜻은 없다"며 "시청자와 방송사 상황과 전파 낭비 등을 두루 고려해서 결정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최근 흔들리기 시작한 방송 3사의 협조체계가 다시 공고해질 수 있을 것인지에 대한 회의적인 시각도 제기되고 있다. KBS 관계자는 "MBC가 위약금을 물더라도 준결승전 방송을 강행하겠다는 입장인 것으로 알고 있다"며 MBC와 SBS가 공조해 KBS를 압박할 수 있다는 점을 시사했다. 이어 "법원의 결정은 방송금지 가처분을 내려달라는 신청을 기각했을 뿐 재판매를 명령한 것은 아니다"라고 밝혔다. 이번 사건을 계기로 방송 3사의 협조가 흔들리면 중계권 확보 경쟁이 과열되면서 중계권료가 올라갈 가능성이 있고 이럴 경우 국부 유출이라는 비판을 피하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방송계 관계자는 "방송 3사가 IB스포츠에 대해 중계권료만 올려놨다고 비판했는데 이러한 비난이 방송 3사에 돌아갈 것"이라며 "또한 중계권과 관련한 국제적 룰을 무시해 국제적 망신 사례가 될 우려도 있다"고 지적했다. (서울=연합뉴스) 김준억 김영현 기자 justdust@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