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의 대제국 건설 계획이 초기에 강력한 태클을 받았던 때가 있었다.


지중해 무역 상권을 장악하고 번창했던 카르타고의 한니발 장군에 의해서였다.


한니발 장군은 코끼리 부대를 이끌고 지중해를 건너 로마 침공에 성공했으나 절실했던 후원군이 오지 않아 패하고 말았다.


결국 카르타고는 밀어닥친 로마군에 복수를 당해 도시와 비옥한 밀밭은 전소되고 주민 대부분이 학살됐다.


기원전 2세기의 일이다.


세계 문명의 중심이 메소포타미아 문명을 낳은 지중해 이남에서 유럽으로 넘어간 순간이었다.


오랜 세월이 흘러 이슬람화된 이 땅엔 파란색 대문을 빼곤 온통 흰색인 집들이 늘어서 있는 튀니지가 있다.


서울 동빙고동 관저에서 만난 주한 튀니지 대사 부인 나빌라 뱌티는 "튀니지 집의 특징인 돔형 지붕과 흰색 외벽은 아프리카의 뜨거운 햇볕을 반사시키는 기능을 한다"고 말했다.


북아프리카 지중해 연안에 위치한 튀니지에선 집뿐 아니라 아랍 여자들이 외출 때 입는 '시프세리'도 온통 하얗다.


걸프지역 여자들이 검은색을 입는 것과 대조적이다.


뱌티 여사는 "얼굴만 내놓은 채 흰색 시프세리로 몸 전체를 싸고 다니는 것은 우리 할머니 세대까지 흔히 볼 수 있는 풍경이었다"면서 "여자들은 남자들 앞에서 머리카락을 내놓으면 안 됐기 때문인데 머리가 워낙 길어서 다 감추려면 몸 전체를 쌀 수밖에 없었다"고 설명했다.


땅이 비옥하고 여자들이 주로 집안에 있었기 때문에 정성이 흠뻑 들어가는 고급 요리가 많아지는 결과를 가져왔다.


뱌티 여사는 다섯 가지 음식으로 풀 코스를 만들어 보였는데 하나같이 정성의 결정체였다.


에피타이저로 먹는 메시야 샐러드는 양파 토마토 그린페퍼를 그릴에 구워 껍질을 벗긴 후 향채 소금 마늘 레몬즙 올리브오일로 간하고 삶은 계란과 올리브로 장식한다.


메인 요리인 생선 쿠스쿠스는 토마토 소스에 생선을 넣어 우려내 생선은 건지고 찐 밀에 남은 소스를 부어 생선과 함께 먹는다.


디저트를 만드는 데도 숙련이 필요하다.


계란 브리카는 스프링롤 페이퍼와 비슷한 브리카에 참치 야채 계란을 넣고 반으로 접어 튀기는데 반숙 상태로 노른자 형태가 보존돼야 한다.


파이류인 치킨 타진(Tajine)과 수프류인 새우 애자(Ojja) 만들기가 그나마 간단해 보였다.


뱌티 여사는 "튀니지 음식 중엔 준비하는 데 반나절 걸리는 것이 많아서 예전엔 내일 먹을 음식을 미리 만들어야 할 때도 있었다"고 했다.


"요리는 실제로 예술에 가깝다고 생각하고 나는 그걸 즐긴다"는 말도 빼놓지 않았다.


고향에선 경제학 교수였다는 그녀의 얼굴은 요리할 때도 학구적이다.


북아프리카 일대가 다 그렇듯 튀니지에서도 거친 밀을 곱게 빻은 '스물'을 쩌 먹는 쿠스쿠스가 밥 대신이다.


예전엔 집집마다 쿠스쿠스 전용 찜틀인 '쿠스쿠스예'를 갖추고 일상식으로 먹었으나 현대엔 손이 너무 많이 가서 일요일 메뉴로 바뀌었다.


뱌티 여사는 "어머니 세대엔 여름이 시작될 즈음 온 동네 여자들이 모여 1년치 먹을 스물을 같이 만들고 여름내 볕에 말렸다"고 말한다.


한 집에서 1년간 소비하는 스물의 양은 50kg으로 이걸 다 만드는 데 꼬박 3∼4일이 걸렸다.


이웃 알제리에선 쿠스쿠스를 만들 때 습기 없이 찌지만 튀니지에선 다양한 소스를 부어 질퍽하게 먹는 게 차이다.


올리브 나무가 지천에 널려 있는 만큼 올리브와 올리브 오일이 요리에 다양하게 쓰이는 것도 이 나라 음식의 특징이다.


뱌티 여사는 고국이 한때 프랑스 보호령에 속했고 미국 유학 경험이 있어 영어 불어 아랍어를 능통하게 구사한다.


깔끔한 매너와 예술적 요리 솜씨를 겸비한 그녀는 주한 공관장 부인들 사이에서 사교계의 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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